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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신두리 해안사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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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신두리 해안사구를 가다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바닷바람이 제법 차다. 가을도 막바지인 11월은 햇빛이 정수리를 쪼아대는 한낮을 제외하면 바람 끝이 서릿발처럼 맵고 차다. 신두리 해안사구를 찾은 것은 근 20여 년 만이다. 스무 해 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와는 풍경이 많이 달라져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빼곡히 들어찬 펜션 촌과 새로 세워진 사구센터, 그리고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사구 탐방로에 설치된 나무데크까지 예전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단 하나, 변하였으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세찬 바닷바람과 그 바람이 세월을 두고 날라 쌓아 올린 모래 언덕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세계 최대의 모래 언덕이자 슬로시티로 지정된 태안의 가장 독특한 생태관광지로 생태계의 보고로 불리는 곳이다. 빙하기 이후 1만5000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이곳의 모래 언덕은 북서 계절풍을 직접 받는 지역이라서 모래가 강한 바람에 의해 해안가로 옮겨져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이고 쌓여 모래 언덕을 이룬 퇴적지형의 전형이다. 사구 초지, 사구 습지, 사구 임지 등 사구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자연 여건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구지대로 내륙과 해안을 이어주는 완충 역할과 해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2001년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라는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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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전에 다녀갔던 옛 기억은 확 바뀐 풍경이 덧칠되어 가뭇없이 지워졌다. 남은 것이라곤 밤새 들려오던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그래도 바람이 역사한 모래 언덕은 여전하다. 분명 바람이 지금껏 그래 왔듯 수많은 모래를 또 옮기고 옮겨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져 있을 테지만 그 변화를 읽을 만큼 나의 시선은 예리하지 못하고, 관찰력도 뛰어나지 않아 기억 속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상당히 넓은 구역이 정비되어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전국 최대의 해당화 군락지와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갯메꽃, 갯방풍을 비롯해 순비기나무와 같은 희귀 식물이 널리 분포돼 있다. 동물군으로는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사구의 웅덩이에 산란하는 아무르산개구리, 금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멸종됐던 쇠똥구리 200마리를 방사해 그 복원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두웅습지는 시간이 없어 둘러보진 못했으나 사구의 배후습지로 사구 남쪽에 있다. 2007년 람사르 보호 습지로 지정됐다. 습지에 관심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함께 둘러볼 만한 곳이다. 겨울 들머리여서 귀한 꽃들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해당화 언덕과 순비기 언덕에 올라 사구 전체를 조망해보며 맵찬 바닷바람을 맘껏 쐬었다. 새삼 세상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바람과 햇빛, 그리고 시간이란 것을 깨닫는다. 마른 갈대가 바람에 서걱이고, 바람에 모래가 날리고… 모래 위에 새겨진 바람의 발자국(연흔)을 카메라에 담으며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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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이 여행의 끝은 아쉬움과 달콤한 피로감이 겹쳐져 가슴 깊숙이 노을처럼 물든다. 20여 년 전 처음 다녀갔던 나의 발자국들이 가뭇없이 사라졌듯이 다시 찾을 때쯤엔 지금의 나의 기억들도 바람에 쓸리고 모래에 묻혀 작은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자신의 일상의 자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여행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쳐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11월이 가기 전에, 겨울이 오기 전에 일단 떠나볼 일이다. 그곳이 어디든.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