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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12월, 달력 한 장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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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12월, 달력 한 장의 무게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마침내 12월이 되었다. 한 해의 끝자락, 12월로 접어들면서 기온은 확연히 낮아진 듯하다. 석양에 기운 햇살을 받은 나무들이 그림자를 한껏 늘여 놓는 저녁 무렵이 되면 뺨을 스치는 바람 끝이 제법 맵다. 장갑을 끼지 않고 자전거를 타면 찬 바람에 손가락이 아려올 정도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을 갈망하게 되는 것처럼 기온이 떨어질수록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 한 줌이 아쉽기만 하다. 올가을은 너무 짧았다. 아쉬운 대로 북한산에서 단풍 구경을 하긴 했으나 올해는 단풍이 예쁘게 들지 않았다. 이상기온으로 늦더위가 오래 지속되다가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는 바람에 나무들은 미처 단풍 들 틈도 없이 된서리를 맞았다. 푸른 잎이 물들기도 전에 서리 맞아 가지에 말라붙은 모습은 얼핏 보아도 안쓰럽고 위태로워 보인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엽은 떨어져 쌓이고 미화원들은 아침마다 낙엽을 쓸어 모은다. 바람에 쓸리는 낙엽들을 보면 이브 몽탕이 불렀던 ‘고엽’이 생각난다.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작사하고 조제프 코스마가 작곡한 프랑스 샹송의 명작이다. “기억하라 함께 지낸 행복한 나날을/그 시절 삶은 훨씬 활발했고/ 인생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갈퀴로 긁어모은 마른 이파리/ 나는 그 나날을 잊을 수가 없어/ 나는 또 마른 잎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있다….” -자크 프레베르의 ‘고엽’ 일부 – 낙엽은 우리를 감상에 젖게 만들기도 하지만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는 법. 나무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변신의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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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서인지 온몸으로 겨울을 체감하고 있지만 정작 몸보다 먼저 추위를 타는 것은 마음이다. 시간에 눈금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에 조급증이 일게 한다. 연초에 세웠던 원대한 계획이나 소망들이 어긋나지 않고 하나같이 이루어져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예외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뚜렷하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맞닥뜨린 12월의 달력은 바위 같은 무게로 가슴을 찍어 누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12월 달력 한 장의 무게는 지난 열 한 달의 무게와 같다고 했다. 이른 새벽, 매운 찬 바람 속을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천변 풍경을 일별하다 보면 마음에 이는 생각들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잎을 떨군 나무들의 야윈 그림자를 안고 무심히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 무엇을 이루었거나 혹은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 해도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 바다에 이르는 강물도 늘 잔잔히 흐르지는 않는다. 때로는 여울을 만나 굽이치기도 하고, 때로는 호수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도 하면서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아직 우리에겐 천금 같은 12월이란 한 달이 남아있다. 이미 이룬 것들의 목록과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을 구분해 최선을 다해 마지막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여 목표한 바를 이룬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혹여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는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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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아’를 떠올리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세상에 나가 방황하다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애절한 부성을 그린 명작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바닥에 있는 탕자가 아닌 아버지다. 아버지의 손을 자세히 보면 한쪽 손은 투박하고 한쪽 손은 부드럽게 그려져 있다. 투박한 손은 무뚝뚝한 아버지를, 부드러운 손은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제 몇 날 남지 않은 12월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삶은 순간의 합’이란 말처럼 매 순간이 소중하지만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달이라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 12월 달력 한 장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남은 날들을 알차게 보내야겠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