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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메모리 편중 韓 반도체, 이대로 가면 ‘아시아 최약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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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메모리 편중 韓 반도체, 이대로 가면 ‘아시아 최약체’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2023년을 강타한 인공지능(AI) 열풍이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경기 위축의 한파를 제대로 맞았던 글로벌 반도체 업계도 신규 AI 클라우드 및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면서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특히 첨단 AI 칩의 핵심 요소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요 급증으로 국내 제조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 열풍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HBM 특수는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 반도체 업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칫하다간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아시아 최약체 수준으로 전락할 위기감마저 느껴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비중은 각각 24%, 61%였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초라하다. 한국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이 부문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3%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9.2%)의 3분의 1, 중국(6.5%)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는 내년 2월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출입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 2월 중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 반도체 육성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산업부는 지난해 7월에도 △향후 5년간 340조 투자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 10% 달성 △10년간 반도체 인력 15만 명 이상 양성 등으로 구성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사실 우리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육성책을 처음 내놓은 것은 무려 지난 1997년이다. 그럼에도 20여 년이 지난 현재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은 10%는커녕 중국보다 못한 3.3%에 머물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가이드라인’만 제시할 뿐, 실질적으로는 관련 산업 육성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의 반도체 산업 육성책들의 면면을 보면 각국 정부의 진정성과 절실함이 느껴진다.
시스템 반도체 강국인 미국은 공급망 안정화와 반도체 제조 부활을 위해 바이든 행정부 주도로 지난해 수백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포함한 반도체법(CHIPS법)을 발효했다. 그 결과 TSMC, 삼성전자, 인텔 등이 이미 미국 현지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중이다. 또 반도체법 시행 후 지난 1년 동안 추가로 해외 기업으로부터 최소 2240억 달러(약 300조원) 이상 규모의 미국 내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왕년의 반도체 강국이었던 일본 역시 TSMC, IBM, 마이크론 등 해외 기업과 손잡고 첨단 시스템 반도체 공장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2020년 2조 엔(약 18조1200억원)에 이어 최근에 3조4000억 엔(약 30조8000억원)의 정부 예산을 추가로 책정하며 자국에 진출한 해외 반도체 기업에 국가보조금, 세제 혜택, 부동산 규제 해제 등 각종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반도체 관련 산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거듭해온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첨단 7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최신 5G 칩 양산에 성공한 데 이어, 자체 개발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 AI 칩 등을 속속 선보이며 ‘반도체 굴기’를 점차 실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분야에서도 한국을 턱밑까지 쫓아왔다. 지난 11월 말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중국 최초로 첨단 메모리 제품 중 하나인 LPDDR5(저전력 DDR5)의 자국 내 양산을 시작했다. 이 회사는 현재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만 만들고 있는 HBM 제조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낸드 플래시 역시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최근 232단 낸드 개발과 양산에 성공하면서 한국과의 격차를 더욱 줄였다.

이제 우리 정부도 계획만 세우고 업계에 떠넘길 게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표면에 나서 산업 육성을 이끌어야 한다. 5~10년 단위의 책임질 수 없는 목표가 아닌, 당장 1~2년 사이에 실현 가능성이 높은 현실적인 목표부터 찾고, 직접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미 시스템 반도체에서 중국에 한참 뒤처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마저 완전히 따라잡히면 ‘아시아 반도체 최약체’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