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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2025년 상반기 부동산, 춘풍과 한파 사이에서 피는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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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2025년 상반기 부동산, 춘풍과 한파 사이에서 피는 꽃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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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마치 춘풍과 한파가 동시에 부는 기묘한 날씨 속에 놓여 있었다. 금리인하라는 따뜻한 봄바람이 투자자의 마음을 녹이는 동안 정치적 격변이라는 찬바람이 신중함을 요구했다.

이런 상반된 기류 속에서 올해 상반기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선별의 계절'을 맞았다. 좋은 씨앗은 더욱 무성하게 자라났고, 약한 것들은 도태되는 자연의 법칙이 부동산 시장에도 나타났다. 결국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기술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는 자산만이 변화의 물결에서 살아남아 꽃을 피웠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시장의 딜레마


올해는 양손에 서로 다른 무게의 추를 든 저울처럼 미묘한 균형을 유지했다. 한국은행이 2월 기준금리를 2.75%로 내린 것은 투자자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앞으로도 추가 인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신호까지 보내면서 얼어붙은 투자 심리가 녹기 시작했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1분기 상업용 부동산 투자 규모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66%나 늘어난 7조 원을 기록했다.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자 투자자가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기관투자자의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분모 효과'도 자본 유입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동시에 벌어진 정치적 드라마는 투자자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대통령 탄핵과 새 정부 출범이라는 전대미문의 변화에서 많은 이들이 '일단 지켜보자'는 관망 모드에 들어갔다. 상업용 부동산은 워낙 큰돈이 오가는 시장이다 보니 정치적 불확실성의 파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새 정부는 '초고강도 대출 조이기'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도권에서 6억 원 넘는 주택담보대출은 차단하고, 다주택자들의 모기지 대출도 막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과거 정부들과 달리 '세금 폭탄'은 터뜨리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상업용 부동산 투자자에게는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한 대목이다.

'PROPERTIES'로 읽는 시장의 변화 지도


알스퀘어는 올해 상반기 시장 변화를 'PROPERTIES'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보물지도의 암호처럼 각 알파벳이 하나씩 중요한 트렌드를 품고 있다.

P(Prime)는 프라임 오피스의 놀라운 질긴 생명력이다. 서울 최고급 오피스들은 폭풍우 속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꿋꿋했다. 1분기 평균 공실률이 2.6%에 머물렀고, 강남 권역은 IT·핀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자리를 잡으면서 공실률이 2.1%까지 떨어졌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좋은 자산으로 몰리는 '피난처 효과'가 등대처럼 뚜렷하게 빛났다.

R(Rebalancing in Logistics)은 물류센터 시장의 재균형 찾기다. 우후죽순 지어진 물류센터들이 이제야 적정선을 찾고 있다. 1분기 수도권 물류센터 임대료가 평당 3만1800원으로 전분기보다 0.6% 올랐는데, 이는 공급 과잉의 열기가 식으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외국 자본이 전체 거래의 64%를 차지하며 시장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O(Optimization through AI)는 인공지능(AI)이라는 마법사가 변화시키는 데이터센터다. 이 분야는 용광로 같았다. 올해 국내 서버 시장이 33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2030년까지 매년 8.4%씩 성장해 53억 달러라는 거대한 산맥을 이룰 전망이다. 지난 3월에는 전남에 세계 최대 규모인 10GW 용량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승인됐다. 초기 투자액만 35억 달러에 이르는, 말 그대로 바벨탑을 쌓는 수준의 프로젝트다.

P(Problems in knowledge centers)는 지식산업센터라는 상처 받은 아이다. 안타깝게도 이 분야는 깊은 늪에 빠져 있다.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거래량이 4분기 연속, 거래금액은 2분기 연속 추락했다. 각종 세금 혜택이 투기적 개발을 부추긴 결과, 마치 속 빈 강정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공급이 넘쳐났다. 개발업체들이 '일단 짓고 나중에 생각하자'는 식으로 접근하면서 실제 수요와 동떨어진 공급의 홍수가 이어졌다.

E(Evolution of proptech)는 프롭테크라는 물결이다. 부동산과 기술이 만나는 이 분야가 올해 5조 원 규모로 성장하며 22%의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작년 한 해 8000억 원의 벤처 투자를 끌어모으며 전년보다 35%나 늘었다. AI, 블록체인, 가상현실(VR), IoT 같은 첨단 기술들이 새로운 DNA처럼 부동산업의 몸속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R(Rate impact on investment)은 금리라는 마법의 지팡이다. 기준금리 인하와 추가 인하 기대감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업용 부동산 매입 의향이 6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돈 빌리는 비용이 낮아지니 투자자의 마음도 활짝 열린 것이다.

T(Turbulence in politics)는 정치적 태풍의 눈이다. 대통령 탄핵과 새 정부 출범이라는 정치적 쓰나미가 시장에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상업용 부동산은 주로 기관투자자들이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는 분야라 주택보다는 정치적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정책 위험이라는 먹구름은 여전히 하늘에 떠있다.

I(Initiatives by new government)는 새 정부가 내민 정책의 손이다.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강력한 대출규제 정책들이 시장의 물줄기를 바꾸고 있다. 세금 중과라는 독화살은 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서 투자자에게는 그나마 안도의 밧줄을 내려주고 있다.

E(Expansion to regional markets)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다. 새 정부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역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일고 있다. 세종시 완성과 2차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되면 지방 상업용 부동산에도 따뜻한 봄기운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S(Strategies diversification)는 투자자들의 새로운 모험이다. 투자자가 기존 오피스, 리테일이라는 익숙한 영토를 넘어 데이터센터, 코리빙, 시니어 주택, R&D시설 같은 미지의 신대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코리빙은 서울 40㎡ 미만 유닛 월세가 오피스텔보다 1.5배 비싼 113만 원을 기록하며 새로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고 있다.

AI와 클라우드, 인구 변화 같은 근본적인 수요 변화와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만나는 교차점에 선 자산들이 계속 빛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혜안을 가지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개발업계에는 더 이상 '일단 지으면 팔린다'는 낡은 공식에서 벗어나 진짜 수요가 숨 쉬고 있는 곳을 찾으라고 강조한다. IT, 바이오 같은 미래 산업이 모이는 클러스터 근처에 스마트하고 친환경적인 건물을 짓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결국 2025년 상반기는 한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단순한 경기 변동을 넘어선 근본적 체질 개선을 겪은 시기였다. 춘풍과 한파가 교차하는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도 제대로 된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단단해졌고, 미래의 햇살을 향해 가지를 뻗어나갔다. 이런 변화의 파도를 제대로 읽고 발 빠르게 항해하는 선장들만이 앞으로의 바다에서 보물섬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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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