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고죄란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죄이고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는 죄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하면 공소권 없음 또는 공소기각 판결을 받아서 처벌을 면한다. 그렇다면 다른 범죄는 가능한 것일까?
형사 합의는 피해자에게 금전배상을 해주고 선처를 받는 것으로 가해자는 합의금을 지급하고 피해자는 수사·재판기관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한다. 처벌불원서가 제출되면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는 공소권 없음 처분 또는 공소기각 판결로 종결되는 것이다.
사기, 횡령 등 재산범죄는 반의사불벌죄, 친고죄가 아니므로 언급하였듯이 수사 도중 합의되어도 수사는 계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이고 죄가 밝혀진 단계라면 원칙대로 고소 취소와 무관하게 기소되고 처벌된다. 그러나 수사 초기 단계이거나 혐의가 분명치 않은 상황이면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한다. 수사를 진행해봤자 아무런 실익이 없고, 피해자 협조가 없다면 죄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산범죄는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지만 피해자 의사를 중시하는 범죄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인지수사도 가능하지만 보이스피싱이나 다단계사기 등 조직적 범죄가 아니라면 수사기관에서 인지수사 하는 일은 드물다. 이렇게 사기죄는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따라서 기소가 좌우될 수 있어 형사 조정이나 합의가 성립되면 가해자는 처벌을 면할 수도 있다.
이를 악용하는 사기꾼은 피해자가 합의하게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사람을 잘 현혹시키기 때문에 당장 돈이 없다고 사정사정 하여 마음이 약해진 피해자가 합의금을 나중에 받기로 하고 처벌불원서를 먼저 써주는 과오를 범한다.
가해자가 처벌 감경의 이익만을 취하고 돌변하여 합의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피해자가 뒤늦게 후회하고 재고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형사 합의를 할 때 피해배상과 처벌불원서는 대가관계이므로 합의금 지급과 처벌불원서 제출은 동시에 해야 하며 돈을 전액 받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동시에 이행하지 않으면 일방이 불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가 되면 피해자는 더 이상 추가적인 배상을 요구할 수 없고 다시 고소할 수도 없다. 약속과 달리 이행하지 않아도 이를 이유로 합의를 번복하고 다시 처벌받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사기꾼이 합의금을 줄 것처럼 또 속였기 때문에 별개의 사기죄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해자가 합의 내용을 어기고 합의금을 안 주는 것을 기망행위로 볼 수는 없으며 합의 내용 불이행은 단순한 채무불이행, 즉 민사적인 문제이다.
또한 피해자가 재산상 처분행위를 한 것이 없고, 별도의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사기죄가 될 수는 없다. 이렇게 되면 구제 방법이 없는 것이다. 피해자로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속아서 고소취소를 해주거나 돈을 전액 받지 않고 합의에 응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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