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산에 대한 소유와 처분의 자유가 있다. 이는 사후에도 마찬가지여서 고인은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겨서 상속인과 상속분을 자유로이 정할 수 있다.
유언을 남기지 않고 사망하면 법정상속이 개시된다. 민법에는 법정상속인과 상속분이 규정되어 있다. 1순위 법정상속인은 직계비속과 배우자, 2순위는 직계존속과 배우자, 3순위는 형제자매, 4순위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다.
배우자는 직계비속 또는 직계존속과 공동상속인이 되고 직계비속과 직계존속이 없을 때는 단독 상속인이 된다. 배우자는 최선순위 상속인일 뿐 아니라 상속분도 가장 많아서 다른 공동상속인보다 50% 가산해서 받는다.
상속이란 고인의 재산과 채무를 포괄적으로 승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상속의 효력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승계하는 것을 단순승인이라고 한다. 만일 고인의 빚이 재산보다 많은데 단순승인을 하면 상속인이 본인 재산을 투입하여 빚을 갚아야 한다.
본인 책임 없이 부담하는 상속채무는 가혹한 굴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상속인은 빚을 물려받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상속 포기를 하면 재산도 빚도 승계 받지 않고 소급하여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게 된다.
고인의 재산과 빚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 내에서 상속채무를 갚는 것이다. 그러므로 빚이 더 많아도 상속인이 본인 재산을 투입하여 빚을 갚을 의무가 없다. 상속재산으로 빚을 변제하고 남는 돈은 상속인이 가질 수 있다.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은 정해진 기간 내에 법원에 신고해야 하는데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법원에 신고서를 제출한다. 이 기간 내에 하지 못하면 단순승인 한 것으로 간주되어 결국 모든 빚과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다.
만일 상속인이 뒤늦게 빚이 재산을 초과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특별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 이때는 한정승인 사유를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특별 한정승인은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인정되며 채무초과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에 중과실이 없어야 한다.
상속 포기는 상속인의 지위를 승계하지 않는 것일 뿐 빚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빚은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골고루 분배되고 공동상속인이 모두 상속 포기 하면 후순위 상속인이 빚을 물려받게 된다.
특히 주의할 점은 고인의 자녀들이 모두 상속 포기 하면 그 빚은 손자녀에게 넘어가므로 손자녀들까지 상속 포기를 해야 한다. 결국 누군가가 빚을 전부 떠안지 않으려면 4순위 상속인까지 전원 상속 포기를 해야만 한다.
4순위까지 모두 포기한다는 것은 너무 번거롭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공동상속인 중 1인이 한정승인을 하고 나머지는 상속 포기를 하는 방법이 주로 이용된다. 한정승인을 하면 재산과 채무를 모두 물려받지만 책임만 제한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승인과 마찬가지로 상속 절차가 종료되므로 빚이 승계될 염려가 없다.
이때 주의할 점은 1순위 공동상속인 중에 한정승인자 이외의 나머지 상속 포기자들에게 자녀가 있을 때이다. 빚이 자녀들에게 넘어가므로 미성년 자녀들도 전원 상속 포기를 해줘야 한다. 상속 포기 기간을 도과하여 방치하다가 성인이 되어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빚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최근 민법 제1019조 제4항이 신설되어 미성년자 특별한정승인이 가능해졌다. 즉 성년이 된 후 사유를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하기 전에 상속인이 고인의 재산을 처분하면 단순승인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재산을 조회하던 중 고인의 예금을 인출하거나 퇴직금을 수령하거나, 임차보증금을 반환받아 쓰거나 차량을 처분하면 더 이상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할 수 없고 상속받은 빚을 전부 갚아야 하는 것이다. 상속 포기, 한정승인 이후에 상속재산을 은닉하거나 부정 소비해도 마찬가지이다.
슬픔에 잠긴 상황에서 상속 재산과 빚을 조사하여 3월내에 법원에 신고한다는 것은 잔인할 정도로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속과 관련된 제척기간은 매우 짧으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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