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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OPEC 카르텔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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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OPEC 카르텔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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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 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오늘날 전세계 석유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슈퍼 파워 OPEC이 창설된 것은 1960년이다. 그 당시 세계 석유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서구 거대 석유 자본 즉 7공주로 불리는 이른바 세븐시스터즈(Seven Sisters)에 맞서 자국 자원 보호와 가격 결정권 회복을 목적으로 결성된 일종의 자원 민족주의 결집체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석유 시장은 엑손, 모빌, 쉐브론, 걸프, 텍사코(이상 미국), BP(영국), 로열더치쉘(영국·네덜란드) 등 7개 기업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석유 카르텔'을 형성하여 산유국에 불리한 양도 계약을 맺고, 생산량과 가격을 임의로 결정하며 막대한 이윤을 독점했다. 이를 금융시장에서는 세븐시스터즈라고 불렀다. 산유국들은 자국 영토에서 뽑아 올리는 석유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자원 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었다.1960년 바그다드 회의는 이러한 불평등 구조에 반기를 든 첫 사건이다.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모여 OPEC을 창설했다. 초기에는 영향력이 미미했다. 세븐시스터즈를 상대하기에는 힘이 너무도 약했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을 기점으로 전세는 역전되었다. 산유국들이 석유를 국유화하고 가격 결정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무소불위였던 세븐 시스터즈는 원유 생산자에서 단순 구매자 혹은 기술 서비스 제공자로 위상이 강등되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부의 대 이동이다.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에 가해진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거치며 OPEC은 단순한 협의체를 넘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권력기관으로 급부상했다. 감산과 증산이라는 카드를 통해 국제 유가를 조절하면서 서구 강대국들의 정치적 결정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 들어 미국에서 셰일 혁명이 일어나면서 OPEC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여기에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탈 탄소 흐름까지 나오면서 OPEC의 위상은 더 쭈그러들었다. 다급해진 산유국들은 러시아를 포함한 'OPEC+' 체제로 확장하며 생존을 도모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UAE의 OPEC와 OPEC+는 석유카르텔과 세계경제에 또 한번의 중대한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OPEC+(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10개국의 연대체)에서의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UAE는 12개 회원국 중 산유량이 세번째로 많다, 이런 UAE의 탈퇴 결정으로 국제 유가를 사실상 지배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오일 카르텔'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수하일 무함마드 알마즈루에이 UAE 에너지 장관은 로이터 통신에 "OPEC과 OPEC+를 탈퇴함으로써 이들 그룹이 부과하는 (산유량) 의무에서 벗어나 유연성을 갖게 됐다"며 "사우디를 포함해 어떤 나라와도 탈퇴와 관련해 (사전에) 직접 협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OPEC과 OPEC+는 국제유가 조절을 위해 회원국에 산유량 할당량을 정하는 방식으로 원유 생산을 제한하는 데 이런 제약을 거부하고 산유량을 자체 정책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UAE의 이같은 선언은 걸프의 '형제국'이라지만 불협화음이 조금씩 커지는 사우디와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두나라는 예멘,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내전에서 서로 다른 진영을 지원하면서 사실상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가장 최근엔 예멘에서 사우디가 UAE의 지원을 받는 남부 분리주의 세력을 공습하면서 양측이 군사 충돌 직전까지 갔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미묘하게 경쟁 관계가 됐다.그간 걸프 지역의 투자·교역·관광 중심지는 두바이를 앞세운 UAE가 선두였다. 사우디가 UAE를 모델로 한 탈석유 프로젝트 '비전 2030'을 추진하면서 UAE에 쏠렸던 경제적 관심을 잠식하고 있다.

OPEC 탈퇴라는 중요한 결정을 중동 전쟁 중에 발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걸프 산유국의 원유 수출이 장기간 차질을 빚어 국제 원유 시장이 재편되자 UAE는 독립적인 에너지 정책에 족쇄와도 같았던 OPEC의 산유량 쿼터를 거부할 기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랍에미레이트 UAE는 다른 걸프 산유국과 달리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푸자이라 수출항이 있어 산유량을 늘리기만 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전 UAE의 산유량은 하루 평균 약 340만 배럴이었다. UAE의 실제 산유 능력은 이보다 약 100만 배럴 더 많다.

2019년 카타르가 OPEC 탈퇴를 계기로 에너지 분야뿐 아니라 외교·안보 정책까지 사우디의 영향권을 벗어나기로 한 것처럼 UAE도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고 할 수 있다. UAE의 이번 결정은 걸프 지역 6개국의 연대체인 걸프협력회의(GCC)의 결속력에도 악재다. GCC는 아랍, 이슬람권에다 산유국이라는 공통 분모를 기반으로 한때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 공동체까지 시도했지만 카타르가 독자 노선을 강화한 데다 사우디와 UAE의 마찰까지 커지는 터였다.이번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은 GCC 6개 회원국은 안보·국방까지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엄중한 현실을 마주하게 됐고 UAE의 '독립 선언'으로 이어졌다.

오랜 시간 긴밀한 우방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충돌하는 배경에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전통적 석유 맹주인 사우디는 유가 하방 지지를 위해 감산 기조를 유지하고자 한다.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추진하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고유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이에 반해 UAE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산유 능력을 대폭 확충해 놓은 상태다. 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MBZ) 대통령은 전 세계가 탈화석연료 시대로 진입하기 전에, 즉 석유의 가치가 높을 때 최대한 많이 생산하여 국부를 축적하고 경제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고 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감산 쿼터가 UAE 입장에서는 자국의 성장 잠재력을 가로막는 족쇄로 느껴지는 것이다.
UAE의 OPEC 탈퇴 논란은 단순히 한 국가의 선택 문제를 넘어선다. 이번 사건은 지난 세기를 지배했던 산유국 중심의 자원 독점 체제가 종언을 고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세계 경제는 이제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극심한 변동성과 패권 경쟁이라는 거친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자원빈국인 우리로서는 중동의 불협화음을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변화를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면서도 신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치밀한 정보 분석과 유연한 외교, 그리고 흔들림 없는 에너지 자립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에너지 각가도생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