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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미국 대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헤일리 돌풍"과 IMF 브레턴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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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미국 대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헤일리 돌풍"과 IMF 브레턴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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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헤일리
미국 워싱턴에서 뉴욕을 거쳐 북동쪽으로 달리면 캐나다 국경 좀 못 미쳐 브레턴우즈라는 유명한 스키 리조트를 만날 수 있다. 2차 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어지던 1944년 이곳에서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모여 전후 새로운 경제 질서를 이끌어 갈 중심기구로 국제통화기금, 즉 IMF 창설을 합의한다.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오늘날의 금융시스템이 바로 이때 만들어졌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체제라고 부른다. 그 회의가 열린 브레턴우즈의 지명에서 따온 말이다.

브레턴우즈는 미국 뉴햄프셔주 코어스군 캐럴에 있는 마을이다. 화이트마운틴 국유림의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산의 최고봉인 워싱턴산의 기슭에 브레턴우즈가 위치하고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과 최대 경제도시 뉴욕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 리조트다. 2차 대전 때 연합국의 지도자들이 회의 장소로 굳이 브레턴우즈를 택한 것은 산세가 높고 골이 깊어 독일의 포격을 피하기 유리한데다 워싱턴 또는 뉴욕과 가까워 이동도 편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뉴햄프셔주에서는 세계 역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회의가 많이 열렸다.
뉴햄프셔주에는 브레턴우즈 못지않게 세계사에 큰 영향을 준 곳으로 포츠머스(Portsmouth)가 있다. 구한말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그 유명한 포츠머스 조약이 바로 이곳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체결됐다.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러일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일본과 러시아가 맺은 강화조약이다. 당시 일본과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정면충돌했다. 일본은 러시아와의 갈등이 고조되자 1904년 2월 뤼순(旅順)의 러시아 군대를 공격해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동해에서 러시아의 세계적 해군인 발틱(Baltic)함대를 전멸시켰다. 마침 러시아 내부에서는 파업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본군도 장기간의 전쟁 수행에 지쳐 있었다.
이때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조정에 나섰다.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의 전권대사를 미국의 포츠머스로 불러 양국 직접 회담 형식으로 협상토록 했다. 미국은 알선국으로서 입회와 발언에 참여했다. 약 1개월의 협상 끝에, 일본의 전권외상 고무라 주타로와 러시아의 전권 재무장관 비테 사이에 전문 15개조의 강화조약이 체결됐다. 이것이 그 유명한 포츠머스 조약이다. 이 조약의 제1조가 "한국에서 일본의 우월권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 조항을 근거로 조선에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강요한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들어가는 첫 단추가 바로 포츠머스 조약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브레턴우즈와 포츠머스의 역사를 만든 이곳 뉴햄프셔주에서는 다음 주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정치 이벤트가 열린다. 미국 공화당은 오는 1월 23일 뉴햄프셔주에서 첫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개최한다.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는 아이오와 코커스와 함께 대선의 향방을 좌우하는 '풍향계'로 평가받는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첫 경선은 16일 아이오와 코커스였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공화당 당원들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데 반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원하는 모두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 그런 만큼 미국의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과반 득표'로 압승을 거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통해 대세론을 굳혀갈지 여부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간 2위 경쟁의 향배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이오와에 이어 뉴햄프셔에서 큰 격차로 승리할 경우 '대세론'을 굳힐 수 있을 전망이다. 이 경우 오는 3월 5일 '슈퍼 화요일' 이전, 조기에 대선 후보로 확정돼 민주당 후보가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본선 경쟁에 집중하겠다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뉴햄프셔 경선 여론조사에서 4~5%의 지지율을 기록해온 비벡 라마스와미 후보가 아이오와 코커스 이후 후보직을 사퇴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것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햄프셔에서 뼈아픈 결과를 얻게 될 경우엔 목표 달성이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헤일리 전 대사가 어떤 결과를 낼지도 주목된다. 헤일리 전 대사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3위'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던 만큼 뉴햄프셔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헤일리 전 대사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꺾는 '깜짝 이변'을 일으킨다면 확실한 반전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당원만 참여하는 코커스와 달리 프라이머리는 일반 유권자도 참여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확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헤일리 전 대사가 뉴햄프셔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와 관련해 실시된 42개의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헤일리 전 대사는 평균 30.9%를 얻어 트럼프 전 대통령(42%)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두 사람 간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혀진 결과도 있다.

헤일리 전 대사가 뉴햄프셔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세론에 힘을 실어주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깜짝 2위'를 기록한 디샌티스 주지사는 현재 뉴햄프셔에선 녹록지 않은 여건이다. 더힐의 여론조사 분석에선 평균 6.6%의 지지율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헤일리 전 대사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두고 사퇴론까지 제기됐던 상황에서 '2위'에 오르며 반전 계기를 마련했던 만큼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후보들은 속속 뉴햄프셔에 도착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일 앳킨슨, 17일 포츠머스 등의 유세를 예고했다. 헤일리 전 대사 역시 16일 브레턴우즈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와 유세를 펼칠 예정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16일 먼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찾았다가 뉴햄프셔로 향할 예정이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의 대의원 선출 결과는 역대 미국 대통령 후보 결정과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 왔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민주·공화 양당의 많은 대통령 후보를 4~5명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민주·공화 양당의 대통령 후보를 1~2명으로 압축하는 역할을 한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결과에 따라 많은 후보들이 대선 경쟁을 포기하고 1, 2위만 남아 전당대회 직전까지 프라이머리에 참여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당원들의 표심이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의 표심을 직접 읽을 수 있다. 당원이든 비당원이든 누구나 등록만 하면 투표할 수 있다. 당원은 물론 당적이 없는 일반인도 민주·공화 양당 중 하나를 택해 투표할 수 있다. 다만 뉴햄프셔에 거주하는 백인 인구 비율이 90%가 넘어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는다.

뉴햄프셔는 1952년부터 미국에서 제일 먼저 프라이머리를 실시한 곳이다. 뉴햄프셔가 1952년 프라이머리를 개최한 이래 1위를 놓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는 1992년 빌 클린턴, 2000년 조지 부시,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뿐이다. 4년 전 공화당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85.5% 득표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당원들의 표심을 넘어 일반 유권자들의 표심을 직접 읽을 수 있는 첫 계기라는 점에서 선거전 초반 판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헤일리 돌풍이 신기루인지, 아니면 트럼프와 맞설 가공할 위력인지는 뉴햄프셔주에서 판정이 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