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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매화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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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매화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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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바람이 맵차다. 한 차례 혹한이 지나간 뒤여서 엔간한 추위쯤은 거뜬히 이겨낼 만도 한데 뺨을 스치는 바람이 아직은 겨울임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볕 바른 담벼락 아래 서면 햇살의 온기가 느껴져 어딘가에 꼭 봄이 와 있을 것만 같아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계절은 마디가 없는 것이라서, 그 경계 또한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겨울 속에 봄이 있기도 하고, 봄 속에도 겨울이 남아 있기도 하다. 날씨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 또한 계절을 체감하는 정도도 천차만별이다. 혹한의 겨울을 견디는 힘은 봄이 오리라는 믿음이다. 옛사람들은 ‘구구세한도’를 그리며 추위를 견디고 봄을 기다렸듯이 맵찬 북풍을 뚫고 우리 곁으로 봄을 데리고 오는 꽃이 바로 매화다.

매화는 매실나무의 꽃이다. 매실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한국·일본에 분포하는 장미과의 소교목으로 키는 5m 정도까지 자란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인데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잎보다 먼저 꽃이 핀다. 꽃이 진 뒤에 맺히는 열매가 매실인데 3000년 전부터 식품이나 약재로 사용했다. 매실은 둥근 모양으로 5~ 6월에 녹색에서 누렇게 익는데 과육이 80% 정도인데 수분이 85%, 당분이 10% 정도 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때 정원수로 전해져서 고려 때부터 약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알칼리성 식품으로 피로 해소와 체질 개선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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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꽃인들 예쁘지 않으랴마는 매화는 옛 선비들이 유난히 아끼던 꽃이었다. 매화를 보며 자신도 고난을 딛고 멀리 맑은 향기를 전하는 매화 같은 사람이기를 바랐다. 소나무·대나무와 더불어 추위를 견디는 ‘세한삼우’로 칭했다. 매화를 좋아했던 시인을 꼽자면 중국에서는 북송 때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린 임포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수백 편의 매화에 관한 시를 쓰고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긴 퇴계 이황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내 집에도 매화도가 한 점 걸려 있다. 시커먼 매화나무 고목의 등걸 위로 홍매·백매가 소담스레 피어 있는 그림은 날마다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가만히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매향이 내게로 건너오는 듯 청신한 기운을 내게 불어넣어 준다.

“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놓는다/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은 말// 뜨거운 송아지를 여남은 마리쯤 받아낸 내 아버지에게 배냇적부터 배운” -문태준의 시 ‘이제 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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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출신의 문태준 시인이 쓴 매화에 대한 시도 눈길을 끈다. 특히 매화를 두고 ‘피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한 표현은 절창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오느냐”란 말 속엔 오랜 기다림의 시간과 기다리는 동안의 마음 졸인 불안과 반가움이 함께 녹아 있다. 그래서 더욱 뜨겁고 깊은 말이다.

흔히 말하기를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고 한다. 뒤 강물이 앞 강물을 밀고 가듯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계절은 다음 계절을 향해 간다. 비록 지금의 삶이 팍팍하다 해도 지레 겁을 먹거나 체념할 일은 아니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도 매화를 그리듯이, 이 힘든 시간을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리란 희망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삶이 고단할수록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 또한 줄어드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마음에 꽃을 품고 살다 보면 누구나 꽃 피는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