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BNE협상컨설팅 대표 겸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당신들 제안은 나쁘지 않군요.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유리한 조건을 원합니다." 상대방이 말했다. AI는 즉시 상대방의 과거 협상 패턴을 분석했다. 이 기업은 통상 세 번째 제안에서 주요 조건을 양보하는 경향이 있었다. AI는협상가에게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했다. "이들이 이번에도 같은 패턴을 따를 확률 78%. 추가 제안을 할 것인지 판단하십시오."
협상가는 AI의 분석을 참고해 제안을 조정했다. 그리고 30분 후, 예상한 대로 협상은 타결됐다.
글로벌 기업들은 어떻게 AI를 쓰는가?
AI기반 협상은 이제 현실이 됐다. 미국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Walmart),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Amazon), 아이비엠(IBM)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내로라 하는 기업이 AI를 통해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아마존의 AI는 매일 250만 개 이상의 상품 가격을 자동으로 조정하며, 경쟁사 가격과 수요 변동을 실시간 분석해 최적의 가격을 설정한다. 예를 들어, 2023년 11월, 아마존은 삼성 55인치 OLED TV의 가격을 1599 달러에서 1479달러로 자동 조정해 경쟁 업체보다 7% 저렴하게 제공했다. 월마트는 또 미국 소비재 기업 P&G와 벌인 협상에서 AI 기반 가격 조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월마트는 지난 2023년 8월 기저귀 브랜드 팸퍼스(Pampers)의 공급 가격을 5% 인하하는 협상을 했다. AI는 원자재 가격 변동, 운송비 증가율 등을 분석해 최적의 협상 포인트를 도출했으며, 협상 시간은 기존 6주에서 2주로 단축됐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AI를 활용해 계약서 검토를 자동화하고 있다.계약 협상에서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것은 필수다. IBM왓슨은 계약서에서 '자동 갱신(Automatic Renewal)'과 같은 숨겨진 조항을 탐지해 기업이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도록 돕는다. 한 유럽 IT 기업은 지난 2023년 5월 왓슨을 활용해 마이크로스포트 애져( Microsoft Azure)와의 클라우드 서비스 계약서에서 계약 연장 시 비용이 20% 상승하는 조항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 2022년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약 분석 AI를 활용해 100페이지 이상의 글로벌 금융 계약서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자동화했다. 이 AI는 기존 계약과 비교해 불리한 조건이 추가됐는지를 99% 정확도로 감지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 기업들은 AI의 감정 분석 기능을 활용해 협상 전략을 최적화하고 있다. 협상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협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반영한 조치다. 영국 은행 HSBC는 AI를 활용해 고객과의 대화에서 감정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예를 들어,HSBC는 지난 2023년 7월 기업 대출 협상 중 상대방 대표의 목소리 높이가 특정 조건에서 15% 상승하는 것을 감지했고, 이를 기반으로 조건을 조정해 협상 타결에 성공했다.
JP모건은 AI 기반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의 협상 패턴을 학습하고, 실시간 협상 대응 전략을 자동으로 조정한다. AI 도입 후 JP모건의 고객 유지율이 15% 증가했으며, 협상 성공률이 기존 대비 22% 상승했다.
미국 AI가 뛰어나지만 한국 기업들이 쉽게 적용할 수 없는 이유
미국의 AI 협상 기술은 강력하다. IBM왓슨,오픈에이아이(OpenAI) GPT,구들딥마인드(Google DeepMind) 등의 첨단 AI 모델이 협상과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이 강력하다고 해서 한국 기업들이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한국 주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협상 교육과 컨설팅을 하며, 기업 리더들과 심층 대화를 통해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결과, AI 협상 도입 성공을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용, 기술 환경, 비즈니스 문화 차이라는 세 가지 주요 장벽이 한국 기업들의 빠른 AI 도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첫째, 비용문제이다. 미국 AI 협상 솔루션은 강력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IBM왓슨의 약서 분석 AI는 기업 규모에 따라 연간 최소 40만 달러(약 5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JP모건이 왓슨을 도입할 당시 5년 계약 기준으로 총 240만 달러(약 3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오픈에이아이의 최신 GPT 기반 협상 AI 솔루션은 월 약 7만5000달러(약 1억 원) 이상의 라이선스 비용이 발생하며, 기업 맞춤형 모델을 적용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구글딥마인의 협상 AI를 이용하는 글로벌 기업은 데이터 기반 협상 시뮬레이션을 활용할 수 있지만, 이 시스템은 초기 구축 비용이 약 80만 달러(약 10억 원 이상이며, 지속적인 유지 보수 비용이 발생한다.
실제로, 한국의 한 대기업은 AI 기반계약서 분석 솔루션을 검토했지만, 초기 도입 비용과 연간 유지 보수 비용이 20억 원 이상 들어간다는 점에서 도입을 포기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AI 도입 비용 부담이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둘째, 기술 환경의 차이다.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AI 협상 시스템을 바로 적용하기에는 IT 인프라와 데이터 활용 역량에서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협상 데이터 부족이다. 미국의 AI 협상 시스템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된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AI 가격 협상 모델은 하루 평균 500억 개 이상의 데이터 포인트를 분석해 실시간 가격 조정을 수행한다. IBM왓슨은 글로벌 기업의 법률 문서를 1000만 개 이상 학습하여 계약 리스크를 자동으로 감지할 수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협상 관련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축적되지 않고있어 AI가 학습할 충분한 데이터가 부족한 실정이다. 한 한국 대기업은 AI 기반 협상 솔루션 도입을 고려했으나, 내부계약과 협상 데이터가 부족해 AI의 학습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프로젝트를 보류했다.
한국 기업들은 AWS, 구글클라우드, 마이크로스포트 애져 같은 글로벌 클라우드 플랫폼을 활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글로벌 AI 협상 솔루션 대부분이 클라우드 기반인데, 한국 기업들은 보안 문제와 데이터 주권 문제 탓에 클라우드 인프라 도입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셋째, 비즈니스 문화 차이다. AI 기반 협상 시스템은 장기간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여 최적의 협상 전략을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조직 문화는 여기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의사결정 구조는 단기 성과 중심인데다 인간 협상가 중심이다. 미국 기업들은 협상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축적하고 AI 시스템이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단기 성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AI를 통한 데이터 축적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월마트는 5년간 AI 협상 데이터를 누적해 공급업체와의 협상 성공률을 38% 높였지만 한국 대기업들은 1~2년 내 성과가 나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철회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 기업들은 협상 AI를 신뢰하기보다는 여전히 경험 많은 협상 담당자의 직관과 감각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AI가 제안한 협상 전략이 있음에도 기업 내 협상 전문가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문제 탓에 한국의 한 대기업은 AI 기반 협상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지만, 최종적으로 담당자들이 AI의 분석 결과를 신뢰하지 않고 기존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면서 AI의 효용성이 크게 감소한 사례가 있다.
한국 기업을 위한 맞춤형 AI 협상 시스템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AI 협상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현실상 어렵다. 비용과 데이터, 문화 차이를 고려한 최적화된 AI 협상 기술 개발이 필수이다. 민간 기업들이 고비용 문제 없이, 별도의 커스터마이징(맞춤제작) 없이 즉시 사용할 수 있으며, 복잡한 설정 없이 데이터를 업로드하기만 하면 AI가 자동으로 협상 전략을 분석해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이러한 AI라면 한국 기업들이 AI 협상을 빠르고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막대한 비용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인 AI시스템으로 기업별 맞춤 설정 없이 데이터를 업로드하는 것 만으로 자동 분석이 가능하고,사용자 친화적인 UI/UX로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가 있으며, 한국 기업 문화에 최적화된 협상 분석 모델을 적용하고, 클라우드와 온프레미스(On-Premise) 옵션 제공으로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미국 AI 협상 시스템이 강력한 분석 기능을 제공하지만, 비용과 도입 절차가 복잡해 쉽게 적용하기 어려웠던 반면, 이러한 협상 AI라면 한국 기업들의 실정에 딱 맞는 솔루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과연 이런 협상 AI가 존재할까? 물론 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강력한 요구에 개발돼 있다.
이제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협상 무대에서 AI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비싸고 복잡한 글로벌 AI 대신 한국 기업들의 협상 환경에 최적화된 AI라면 한국 협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AI 협상이 비즈니스 협상의 필수 전략으로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
박상기 BNE컨설팅 대표 겸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