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20장
배움을 끊으면 근심 걱정이 없다
배움을 끊으면 근심 걱정이 없다

가령 상대방을 싫어하면서도 잘 보여서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어질고 의로운 체하는 언행은 진실에 반하는 위선이지 바른 도리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천변만화한다. 그때그때 품은 감정에 따라서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제 이익을 챙기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일비재하다. 인간의 본심은 도이다. 본래부터 인의 자체여서 인의가 저절로 나타나므로 가식이 없다. 가식이 없으므로 규정 지어진 인의라는 지식을 배우고 익히지 않아도 사람의 도리가 은은히 풍기는 향기처럼 도인의 면모가 저절로 드러난다.
그렇게 인격이 고고하게 갖추어지면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근심 걱정도 없고 근심 걱정이 없으면 마음은 항상 거울처럼 맑고 꽃 피는 봄 날씨처럼 평화로워진다. 그러기에 늘 행복하고 다툴 일도 없다. 다툴 일이 없으면 타인으로부터 해를 입을 일도 없다. 따라서 많이 배우고 많이 익혀서 지식이 차고 넘쳐서 천하 사람들의 찬사를 듣는 것보다 훌륭하다. 유위로 익힌 지식은 목적하는 바를 깨달아서 무위로 도리를 행하는 것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는 속성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배움을 끊으면 근심 걱정이 없어진다. 공손한 소리와 아첨하는 소리가 얼마나 차이가 나고, 선하고 악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배움을 끊어버린다는 뜻은, 사람이 지켜야 할 최고의 덕목인 인의라는 규범에 속박되지 말라는 뜻이 함축돼있다. 배운다는 것은 지식이고 지식은 싫건 좋건 반드시 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따른다. 그러나 의무감으로 익힌 지식은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수단으로 배우고 익힌 지식은 이익의 대상으로부터 존중받기 위한 위선이지 올바른 도리가 아니다.
인의는 인간 본성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도리이고, 도리는 마땅히 행해야 할 천지의 이치이며 사람이 지켜야 할 바 최고의 가치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반드시 무위여야만 진실하다. 무엇을 위하기 위하여 위함은 이기적 속성에서 비롯되므로 위선이 진실을 포장하여 발현된다. 그러므로 세속에 탐착한 인간의 심성은 욕망의 성취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므로 도리 따위는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 그런 자들은 오로지 천지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고 익힌 지식을 욕망의 성취를 위한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
참 도리란 설사 자신의 욕망을 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무위가 아니면 미세한 먼지만큼이라도 사심이 따르기 마련이라 진실이라 할 수 없다. 진실한 도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향기처럼 저절로 발현된다. 마치 봄바람이 싹을 틔우듯 무엇을 한다는 생각 없이 관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노자는 "도리에 맞는 공손한 소리와 그러지 않은 아첨하는 소리와 선악의 차이는 얼마나 나는가?" 하고 물었다.
사람의 심성이 그렇다. 공손하게 말한다고 해서 진실이라 단정 지울 수 없듯 선악도 그렇다. 바른 예의에도 거짓은 있고 듣기 싫은 소리에도 진실은 있다. 뱀 혓바닥처럼 갈라져 나오는 인간의 이중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밝으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본래 하나인 선악은 손익을 저울질하는 분별 의식이 갈라놓을 뿐이다. 이에 대하여 붓다의 가르침이 교훈을 준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관찰하고, 바르게 지혜를 활용한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