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 제29장

땅은 도가 낳은 만물을 빠짐없이 담은 신기한 그릇이다. 광대한 바다와 들, 하늘을 나는 것과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 그리고 무수한 생명체와 무생명체 등 존재하는 자연의 그 모든 것을 한 그릇에 담고 평등하게 덕을 베푼다. 그중에서도 사람은 일체 생명과 무생명의 습성을 다 함축하고 있는 기이한 존재다. 이러한 것들을 두루 일컬어 천하라 한다.
천하의 그 모든 존재는 다 지혜가 있고 그 지혜를 모두 아우르면 신이 따로 없을 만큼 신묘하다. 그러므로 천하를 신기한 그릇이라 했다. 천하가 신기한 그릇이므로 함부로 할 수도 없고, 함부로 해서도 안 되며, 마음대로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합의 중용에서 벗어난 행위로 천하를 가지려 들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중용은 인간이 준수해야 할 도의 법칙이다. 도의 법칙은 치우침이 없이 천하의 그 모든 것에 오직 무위로 덕을 베풀 뿐이다. 그런데도 천하를 가지려고 탐욕에 이성을 잃은 자들이 천하를 어지럽히면 반드시 재앙이 덮친다. 누가 그리하는가? 도가 그리한다. 본질인 덕을 거둬들이고 가뭄·홍수·태풍·질병·오염·기아 따위로 그들이 천하를 온전하게 가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설사 천하를 가졌다 해도 잠깐 제 것인 양 버려두었을 뿐 때가 되면 혹독한 시련을 주고 생명을 단축하여 빼앗는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예로 들어보자. 소위 영웅이라는 자들이 천하를 얻으려고 여러 도시국가의 우두머리가 되어 온갖 계략으로 서로 속이고 속고 온갖 흉악한 짓으로 죽이고 죽는 싸움으로 인간을 비롯한 무수한 생명을 죽였다. 땅은 피로 물들고, 죽은 자들의 넋은 묻힐 곳이 없어 짐승에 물어뜯기고 썩어 거름이 되어도 누구 하나 구원해주지 않았다. 그들의 영혼인들 온전하게 머물 곳이 없었을 터, 그러니 신기한 그릇인 천하는 원한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잔혹하게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진나라 시황이 천하를 얻기는 했으나 잠시 지녔을 뿐 50 젊은 나이에 객사하고 천하를 한나라 유방에게 잃었다. 한나라 유방도 마찬가지다. 초나라 항우와 싸우면서 수백만 명이 죽어갔다. 그러나 천하를 얻은 유방과 그의 장군들 역시 일찍 목숨을 잃었다. 200년이 못 가서 다른 나라에 빼앗겼다가 다시 찾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겨우 200년 버티다가 백성이 난을 일으켜 나라를 잃고 다시 삼국시대와 오호 십육국… 그렇게 오늘날까지 나라를 뺏고 뺏기는 전쟁을 계속해 수없는 인명이 죽어갔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 진정코 천하의 주인이 된 자는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다 잃었다. 오늘날의 중국 지도자들 역시 그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을 비롯한 무수한 생명, 그들 모두는 도에 의한 도의 자식이자 도 자체다. 그러기에 도를 품고 있는 이 땅은 신기한 그릇이다.
신기한 그릇, 그 품속에 살아 숨 쉬는 만물에 대해 노자는 말했다. 예로부터 만물은 혹 나아가기도 하고, 혹 따르기도 하고, 입김을 불어 내쉬기도 하고, 혹 굳세기도 하고, 혹 꺾어지기도 한다. 이에 성인은 편안하고 즐거움을 물리치고 사치하고 교만함을 물리친다.
자연과 인간의 이치가 그렇다. 먼저 태어나기도 하고, 뒤따라 태어나기도 하고, 콧김을 내쉬고 입김을 뿜어내면서 거칠게 살아가기도 한다. 굳세기도 연약하기도 하고, 비바람에 초목이 꺾이듯 온갖 풍파를 겪기도 한다. 그러한 것이 무위한 도의 작용이며, 그러한 것을 다 품어주는 천하의 그릇이 신기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은 천하를 얻어 소유하려 하지 않으므로 거칠지도 굳세지도 연약하지도 않다. 사치하거나 편안하고 즐거운 일 따위에 욕심을 내지 않으므로 꺾이지 아니하고 무너질 일도 없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 회장(종교·역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