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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헤이마켓 사건과 첫 노동절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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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헤이마켓 사건과 첫 노동절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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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김대호 경제학박사 (글로벌이코노믹연구소장 / 전 고려대 교수)

노동절의 역사는 18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6년 5월 4일 밤 미국 시카고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느닷없이 한 발의 폭탄이 터졌다. 그 폭탄 소리를 신호탄으로 무차별 총성이 이어졌다.이른바 헤이마켓(Haymarket) 사건이다. 그날 시위는 하루전 경찰에게 살해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파업 참여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평화 행진으로 시작되었다. 경찰이 이 시위를 해산시키려 할때 신원불명의 누군가 다이너마이트를 경찰 쪽으로 던졌다. 폭탄 폭발과 뒤이은 발포로 인하여 경찰 일곱 명과 민간인 네 명 이상이 죽었다.

폭탄을 터뜨린 혐의로 시위중이던 여덟 명이 체포되었다. 기소 증거는 피고 중 한 명이 폭탄을 만들었을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 훗날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그들 여덟 명 중 아무도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고 8명중 중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나머지 한 명에게도 징역 15년이 선고되었다. 사형수 중 두 명은 일리노이 주지사 리처드 오글스비가 종신형으로 감형해 주었다. 한 명은 교수대로 끌려가기 전에 자살했다. 나머지 네 명은 1887년 11월 1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로부터 6년후이던 1893년 신임 일리노이 주지사 존 피터 올트겔드는 그때까지 살아있던 피고들을 모두 사면했다. 잘못된 재판이었다게 주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노동절은 이 미국의 메이데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유혈 사태로부터 유래한다. 헤이마켓 사건이후 미국 노동단체들은 8시간 노동 실현을 위해 그 사건이 처음 발생한 5월 1일을 제1차 시위의 날로 정했다. '하루 8시간 노동'이라는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노동자들의 함성은 자욱한 연기와 비명 속에 묻혔으나 그날의 희생은 140년의 세월을 건너와 전 세계 메이데이(May Day)의 시원이 되었다. 물론 미국은 5월 1일(메이데이)을 노동절로 기념하지 않고 있다. 헤이마켓 사건 이후 5월 1일은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에 의해 '국제 노동자 날(International Workers' Day)'로 추대되었다. 미국 정부와 보수 세력은 5월 1일을 노동절로 지정할 경우, 자칫 노동 운동이 급진적인 사회주의 혁명 운동으로 변질되거나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의 상징적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했다.

1894년 미국 전역을 뒤흔든 '풀먼 파업(Pullman Strike)' 당시,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한 후 실추된 노동자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노동절의 법정 공휴일 지정을 서둘렀다. 이때 그는 의도적으로 5월 1일을 배제하고 9월 첫째 월요일을 선택했다. 이는 메이데이가 가진 호전적이고 혁명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보다 온건하고 화합적인 성격의 휴일을 정착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었다.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5월 1일을 '충성의 날(Loyalty Day)'로 공식 지정했다. 이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메이데이를 체제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에 맞서, 미국 시민들에게 애국심과 체제 충성도를 강조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로 인해 미국 내에서 5월 1일은 노동의 날이 아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날로 성격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동안 한국의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 아래 민간 근로자에게만 국한된 유급 휴일이었다. 공무원과 교사 등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무'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쉬지 않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올해부터 시행된 전 국민 공휴일 지정은 이러한 제도적 이중구조를 타파하고 모든 형태의 노동이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한 것이다. 이는 OECD 주요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 온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에 부합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2026년의 첫 공휴일 노동절을 맞이하는 마음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법정 공휴일 지정이라는 화려한 성과 뒤에는 그 혜택에서조차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와 공무원들이 국가 공인 휴일의 기쁨을 누리는 동안, 고용 형태가 불안정한 비정규직, 파견직, 그리고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빨간 날'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공휴일은 종종 소득의 감소나 더 가혹한 노동 강도를 의미한다. 유급 휴일이 보장되지 않는 현장의 계약 관행 속에서, 이들에게 노동절은 권리를 누리는 날이 아니라 남들이 쉴 때 더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고립된 날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는 '잠재성장률 추락'이라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기초 체력이 무너진 상태에서 특정 계층만 누리는 휴식은 사회적 갈등 비용을 높이고 전체 생산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1886년 헤이마켓의 노동자들이 원했던 것은 일부 엘리트 노동자의 특권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노동 존중 사회는 반쪽짜리 구호에 불과하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의 공휴일 확대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유급 휴식권 보장은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2026년 노동절의 첫 공휴일 시행은 시작일 뿐이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일시적 착시에 취해 잠재성장률의 추락과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헤이마켓 사건이 8시간 노동이라는 현대적 기준을 세웠듯, 오늘의 공휴일 지정이 대한민국 노동 시장의 불공정을 걷어내고 구조개혁을 완성하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때, 비로소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노동절의 공휴일화는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금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15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올해 1.7%, 내년 1.5% 수준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노동 인구의 감소라는 거스를 수 없는 파도 앞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총요소생산성(TFP)'의 향상뿐이다. 총요소생산성의 핵심은 기술 혁신과 제도의 효율성, 그리고 무엇보다 인적 자본의 고도화에 있다. 충분한 재충전과 휴식권의 보장은 노동의 질을 높이고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생산적 투자와 같다. 2026년의 첫 노동절 공휴일 시행은 우리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진다. 140년 전 시카고의 순교자들이 피로써 증명하려 했던 가치는 일부의 특권이 아니라 일하는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외면한 채 '노동 존중'을 외치는 것은 기만에 가깝다. 이제 대한민국은 형식적인 공휴일 확대를 넘어, 가장 취약한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쉼표까지 보장하는 실질적 노동 평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땀방울이 차별 없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우리 경제의 엔진도 다시 힘차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