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오늘날 미국인들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누군가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음을 기억하는 이 날은, 역설적이게도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내전의 상흔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세기를 건너뛰어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를 겪고 있는 2026년의 '트럼프 시대(The Trump Era)'에 이르러, 메모리얼 데이가 지니는 통합의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무거운 현대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메모리얼 데이의 뿌리는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를 두 동강 냈던 남북전쟁(Civil War, 1861~186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 62만 명이라는, 미국이 치른 모든 전쟁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이 참혹한 내전은 수많은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후, 북부와 남부의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묘지를 찾아가 전사한 군인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십자가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메모리얼 데이의 전신인 ‘데코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의 출발이다. 1 868년 5월 5일, 북군 참전용사 단체인 공화국 대군(Grand Army of the Republic)의 총사령관이었던 존 A. 로건(John A. Logan) 장군은 일반명령 11호를 통해 5월 30일을 전사자들의 무덤을 장식하는 날로 공식 지정했다. 5월 30일이라는 날짜가 선택된 이유는 특정 전투가 벌어진 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과 북 어느 한쪽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전사자들의 희생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전국적으로 꽃이 만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해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첫 공식 추모식에는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가필드 하원의원이 연설을 맡았고, 약 5천 명의 참가자가 북군과 남군을 가리지 않고 2만여 개의 무덤에 꽃을 헌화했다. 초기의 데코레이션 데이는 주로 북군 전사자들을 기리는 성격이 강해 남부의 주들은 자신들만의 추모일을 따로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국제적 분쟁에 참전하게 되자, 이 날은 남북전쟁만이 아니라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는 날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국가적 융합의 매개체로 진화한 것이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명칭 역시 자연스럽게 '메모리얼 데이'로 정착되었고,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월요일 공휴일 법(Uniform Monday Holiday Act)'이 발효되면서 현재와 같이 매년 5월의 마지막 월요일로 지정되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적 현실은 메모리얼 데이의 근본적 의미인 '통합'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상과 함께 본격화된 이른바 '트럼프 시대'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균열을 겉으로 드러냈고, 심지어 애국심과 군(軍)에 대한 존중이라는 전통적인 보편 가치조차 당파적 해석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트럼프주의(Trumpism)의 핵심 슬로건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겉보기에는 강력한 국가주의와 국방력 강화, 그리고 참전 용사에 대한 절대적 예우를 강조한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보훈처(VA)의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며 군인과 제대 군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정치적 주요 업적으로 내세웠다. 보수 지지층에게 있어 메모리얼 데이는 강한 미국을 수호한 영웅들을 기리고, 진보 진영의 문화적 수정주의로부터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방어하는 상징적인 날로 소비된다.
트럼프 시대는 군대와 국가의 관계, 그리고 '애국'의 본질에 대해 역사상 유례없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헌법에 대한 맹세(Oath to the Constitution)를 최우선으로 삼는 미군의 전통적 군사 전문주의는, 때때로 지도자 개인에 대한 충성이나 국내 정치적 어젠다와 마찰을 빚었다. 과거 현역 및 퇴역 장성들이 정치적 중립 훼손을 우려해 행정부와 충돌했던 일련의 사건들이나, '미국이 수호해 온 동맹과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논란 등은 전사자들이 무엇을 위해 피를 흘렸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낳았다.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현대의 메모리얼 데이는 진영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해석된다. 한쪽에서는 전사자들의 희생을 이민자 통제, 강력한 국경, 그리고 '위대한 미국의 복원'을 위한 투쟁과 동일시하며 배타적 민족주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활용한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군국주의적 화려함을 경계하며, 전사자들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은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평등과 민주주의, 그리고 포용적 자유라는 점을 역설한다. 국가를 위해 쓰러진 용사들의 죽음마저도 ‘누구의 미국(Whose America)을 위한 희생인가’라는 문화 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남북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뒤, 적군의 무덤에도 함께 꽃을 올리며 시작되었던 '데코레이션 데이'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뼈아픈 교훈을 던진다. 총칼을 들지 않았을 뿐, 현재의 미국(그리고 나아가 정치적 양극화를 겪고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념과 진영의 내전을 치르고 있다 할 수 있다. 트럼프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가 다시금 새겨야 할 메모리얼 데이의 현대적 의미는, 단순히 영웅들을 향해 성조기를 흔들고 감사를 표하는 피상적인 행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추모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제도와 헌법적 가치,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용을 오늘날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이다. 전사자들이 묻힌 알링턴의 고요한 언덕은 공화당의 것도, 민주당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헌법이라는 공동의 약속 아래 묶인 공화국의 자산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