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FOMC 금리인하 명분 쌓기? 트럼프 꼭둑각시
이미지 확대보기온도계를 바꾼다고 끓어오르는 방 안의 온도가 저절로 내려갈수 있을까? 세계의 돈 대통령이라는 연준 의장에 오른 케빈워시가 물가지표 개펀을 시사한 가운데 그 의도와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달아 오르고 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통화정책의 새로운 나침반으로 전통적인 물가 지표 대신 ‘절사평균(Trimmed Mean) PCE’를 역설하고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극단적인 가격 변동이 주는 통계적 노이즈를 제거하여 경제의 진짜 맨얼굴을 보겠다는 학술적 접근처럼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경제사적 맥락에서 한 꺼풀만 벗겨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금리 인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은 통제되고 있다’는 작위적인 명분을 만들어내려는 고도의 정치적 꼼수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현재 미국 경제가 처한 거시경제적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 보자. 지난 4월 기준, 연준이 그동안 가장 신뢰해 온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3% 상승했다. 이는 연준의 장기 물가 목표치인 2%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반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산출하는 '절사평균 PCE' 상승률은 2.3%에 그쳤다. 동일한 경제 생태계를 두고 무려 1%포인트라는 거대한 물가 진단의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워시 의장은 이 2.3%라는 숫자에 방점을 찍으며, 현재의 인플레이션 지표가 불완전하니 대안 지표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시 의장이 꺼내든 '절사평균 PCE'란 도대체 무엇인가. 대체 어떤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지표가 하루아침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절사평균 인플레이션은 모든 품목의 가격 변동률을 순서대로 나열한 뒤 가장 크게 오른 품목과 가장 크게 떨어진 품목을 양극단에서 제외하고 중간값들의 평균을 내는 통계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이 개념은 1990년대 이후 거시경제학계에서 진정한 물가 중심점(Central tendency)을 찾으려는 치열한 학술적 고민의 산물이었다. 기존의 '근원(Core) 인플레이션'은 변동성이 크다는 이유로 식품과 에너지만을 기계적으로 고정 배제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컴퓨터, 자동차, 특정 서비스 등 식품·에너지가 아닌 다른 품목에서도 심각한 가격 왜곡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댈러스 연은 소속 경제학자들은 카테고리를 불문하고 매달 통계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꼬리(Tail) 부분을 잘라내어(Trim) 일시적 충격을 걸러내는 '절사평균 PCE'를 선구적으로 개발했다.
이 지표의 방법론은 경제 구조 변화에 맞춰 진화해 왔다. 특히 2009년 미국 경제분석국(BEA)이 PCE 데이터 체계를 전면 개편하자, 댈러스 연은 역시 이에 발맞춰 기존 계산식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품목들의 가격 변동 분포에서 단순히 양쪽을 똑같이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하위 24%와 상위 31%를 비대칭적으로 제거하는 현재의 고도화된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실제로 올해 2월 전화·통신장비 가격이 연율 기준 50.8%나 급락하고 이사·창고·화물 서비스 가격은 무려 384.6% 급등하는 통계적 기현상이 발생했을 때, 절사평균 PCE는 이러한 극단적 가격 변동을 계산에서 훌륭하게 제외해 냈다. 이처럼 원래 절사평균의 도입 취지는 선량하고 학술적으로 유용했다.
문제는 워시 의장이 이 훌륭한 학술적 도구를 현재의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은폐하는 데 오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워시 의장이 절사평균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최근 관세 부과, 인공지능(AI) 투자 폭증,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특정 품목의 가격 변동성이 커진 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지정학적 변화나 소고기 가격 급등에 따른 일회성 가격 변동이 아닌 근본적인 인플레이션에 관심이 있다고 역설했다.
작금의 물가 상승을 견인하는 요소들은 일시적인 '통계적 노이즈(Noise)'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블록화, 관세 전쟁, 천문학적인 AI 전력 및 인프라 비용은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만들어낸 ‘구조적이고 영구적인 비용 상승(Cost-push)’ 요인이다. 에버코어의 크리슈나 구하가 지적했듯, 관세나 에너지 충격처럼 경제 전반에 파급되는 요인을 단순한 이상치로 간주해버리면 물가 상승세를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댈러스 연은조차 최근 절사평균 PCE가 근원 PCE보다 낮게 나오는 주된 이유가 '관세 영향을 받은 상품 가격 상승'을 상당 부분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시인했다.
결국 워시 의장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지표를 갈아치우려는 근본 원인은 백악관의 주인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데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은 보편적 관세 부과와 대규모 감세로 요약된다. 두 정책 모두 필연적으로 막대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관세는 고스란히 소비자 물가로 전가되고, 감세는 시중에 유동성을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성장률 제고와 증시 부양을 위해 연준에 거센 ‘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책은 물가를 펌프질하는데 금리는 내려야 하는 이 모순 속에서, 3.3%라는 전통적 지표 앞에서는 도저히 금리를 내릴 명분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관세 충격과 공급망 비용 상승분을 기계적으로 걸러낸 2.3%라는 '절사평균'을 끌고 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안착했다”는 착시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 리카르도 트레치의 꼬집음처럼, 이는 연준이 불편한 물가 지표를 무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통계적 마술이 빚어낸 참혹한 역사적 실패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지적처럼 1970년대 오일쇼크와 2021년 코로나19 시기에도 절사평균이나 근원 물가 지표는 경제 구조 변화에 따른 광범위한 물가 상승 압력을 과소평가했다. 특히 1970년대, 닉슨의 재선을 돕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었던 아서 번즈 연준 의장은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이를 지표에서 빼버린 채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집했다. 그 결과 미국 경제는 통제 불능의 ‘대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시대로 추락했고, 훗날 20%에 달하는 살인적인 금리 인상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다. 2021년 팬데믹 직후 물가 상승을 일시적 현상으로 오판해 수십 년 만의 최고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던 연준의 흑역사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 워시 의장이 만지작거리는 절사평균 카드는 과거 번즈 의장의 실패한 마술을 계산식만 바꿔 다시 무대에 올리는 것에 불과하다. 관세 영향이나 지정학적 비용을 통계에서 하위 24%, 상위 31% 명목으로 잘라낸다고 해서,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기업을 운영해야 하는 평범한 경제 주체들의 실제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통찰했듯, 단순한 통계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관세와 지정학적 충격이 잦아지는 시대에 연준이 물가 상승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통화정책의 철학 문제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냉철한 데이터와 현실에 기반해야 하며, 결코 정치적 압력에 타협하는 명분 조작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지표를 내세워 인플레이션이라는 방 안의 코끼리를 못 본 체하려는 시도는 단기적으로 트럼프 백악관을 기쁘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끔찍한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경제 현상은 꼼수 섞인 통계로 가릴 수 없고, 시장은 결국 진실의 값을 매긴다. 워시 의장은 이제 위험한 통계 마술을 멈추고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로 돌아와야 한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