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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파괴와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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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파괴와 건설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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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우리는 지은 것을 허물고, 허문 자리에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나라의 시민이다. 건설을 위한 창조적 파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그 폐해가 너무 커서 모두가 깊이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물 관리를 보자. 상류 지역의 비점오염원 관리는 뒷전으로 미룬 채, 하류의 보(堰)를 열고 닫는 단기 처방만 반복해 왔다. 오염원 관리라는 본질은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구조물만 탓하는 전형적인 본말전도다. 가장 청정해야 할 심심산천의 약수터 주변까지 상업시설이 무분별하게 잠식해 들어가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원전 문제도 다르지 않다. 원전을 당장 멈추고 폐쇄하라던 목소리는 불과 몇 년 만에 AI 시대의 데이터센터 급증과 전력 대란 앞에서 슬그머니 증설로 돌아섰고,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치적으로 내세운 지자체들은 정작 공장을 돌릴 산업용수 부족이 예상되자 시민들에게 절수를 호소하겠다고 한다.

에너지·수소 정책의 현장은 이 모순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가스복합발전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걸림돌이라며 건설을 중단시켰다가, 전력 수급 불안이 현실화되자 다시 짓기로 한다.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조용히 오르내렸다. 국내 생산 기반도, 해외 공급망도 갖추지 못한 채 밀어붙인 청정수소 발전 의무화(CHPS)는 2025년 10월 전격 취소됐다가, 이듬해 여름 '국내산 그린수소 우대'로 축소 재개되기까지 반년 넘게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과학적 검토보다 정치적 일정이 앞선 탓에, 정책을 믿고 자본과 인력을 쏟아부은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기술이나 자본, 인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국가 전략의 총체적 실종이자,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정교한 '설계 철학'의 부재다. 정권이 바뀌고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국가의 핵심 생존 기반인 에너지, 산업, 치수(治水), 환경 정책의 방향이 뒤바뀌었다. 전임 정부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곧 국정 성과의 증표인 양, 5년마다 국가의 기틀을 다시 짜려 했다. 대한민국에는 정권의 선심성 '건설 공약'은 넘쳤을지언정, 국가의 지속 가능한 '설계 철학'은 없었다. 국가의 백년 미래보다 5년짜리 정치 표심과 선거 주기가 언제나 더 강력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략 산업에서 핵심 경쟁국인 중국의 국가 운영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대지만, 한번 정한 장기 전략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수십 년간 흔들림 없이 추진된다는 사실만큼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체제를 부러워하자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체제가 아니라 설계의 지속성이며,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도 초당적 합의와 법제화로 그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삼협댐, 대륙을 잇는 고속철도망, 독자 원전 타운, 희토류 공급망의 독점화, 전기차·배터리·태양광·수소 등 차세대 에너지 산업의 압도적 육성까지 — 중국의 산업 지도는 정파의 이해관계가 아닌 30년 Grand Strategy(대전략) 위에 그려졌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5년마다 국가 전략의 뿌리가 흔들린다. 원전 정책도, 재생에너지 로드맵도, 수소 경제 전략도 —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전 계획은 재검토된다. 전력망과 자원의 유동(Flow)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할 자리에, 표를 의식한 결정만 채워 넣었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국가는 파괴보다 건설을 잘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건설은 콘크리트를 치고 토목 공사로 건물을 올리는 행위가 아니다. 국가의 백년을 뒷받침할 제도를 견고히 다지고, 인재를 장기적으로 키워내며, 핵심 기술을 축적하고, 국민적 신뢰를 쌓아 장기 전략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는 '국가적 축적(Accumulation)의 과정'을 뜻한다. 정책을 뒤엎는 것은 단 한 번의 정치적 결정으로도 충분하지만, 미·중 패권 전쟁과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혹독한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진정한 '건설'은 한 세대의 피와 땀, 흔들리지 않는 정책적 집요함을 요구한다. 결국 이는 에너지의 흐름(Flow)과 경로(Route), 통제력(Control)과 다변화(Diversification)를 30년 단위로 설계하는 문제이지, 5년짜리 정권의 몫이 아니다.

국가는 다가올 선거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미래 세대와 오직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무엇을 허물고 엎을 것인가'를 두고 에너지와 국력을 낭비하는 싸움판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을 향해 30년 동안 흔들림 없이 국가의 기틀과 산업 지도를 세울 것인가'를 깊이 있게 고민하고 실행하는 정교한 '설계 국가'로 거듭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