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2 15:00
오는 8월 4일은 두산그룹을 출범시킨 매헌 박두병 초대회장의 50주기 기일이다. 박두병 회장의 좌우명은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근자성공’이었다. 지금의 사명 역시 선친인 박승직창업의 유지를 따라 '한 말(斗)씩 쉬지 않고 쌓아 올려 산(山)과 같이 커진다'에서 따왔다. 이처럼 근면과 성실을 앞세우는 박 전 회장의 경영철학은 100년 기업 두산의 기반을 다졌다. <글로벌이코노믹>은 박두병 회장 50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와 그가 전하는 기업가 정신에 대해 9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이제는 기업인들이 책임을 느낄 때다. 더 이상의 요구는 오히려 벌을 자초한다.”1972년 정부가 ‘8·3조치’를 발표 후 대한상2023.08.02 15:00
1910년 10월 6일 저녁 8시.서울 종로 4가 자신의 집 사랑채에서 수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던 당시 46세였던 매헌 박승직 두산 창업주는 안방에서 울리는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대번 사내아이임을 직감했다. 위로 딸만 여섯을 둔 그는 누구보다도 아들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경술년, 술월, 술시 삼자 술자에 태어난 대길할 운을 타고났다는 그는 후일 두산그룹 초대회장에 오른 연강 박두병 회장이다.‘근자성공’의 교훈을 되새기다1864년 경기도 광주군 탄벌리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박승직 창업주는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상인이다. 10대 초반 무렵 등잔용 석유와 피물을 등짐을 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장사 수2023.08.02 15:00
‘두산(斗山)’이라는 지금의 상호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1946년이다.1945년 10월 29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변경했던 일본식 사명(삼목상사)을 박승직상점으로 환원했으나 워낙 사회혼란이 극심해 당장은 어떤 활동도 재개할 수 없었다.미 군정이 실시되면서 어느 정도 사회 질서가 잡히자 박승직상점은 문을 열고 활동을 재개했다. 앞서 소화기린맥주(오비맥주의 전신) 관리지배인이었던 박두병 회장은 가업의 승계이자 명실상부한 자신의 사업체로 박승직상점을 무역업체로 부활시키기 위해 무역업에 뛰어들기로 한다.때마침 1946년 1월 그동안 고립 쇄국정책을 견지했던 미 군정청이 1946년 1월 면허제로 무역을 재개2023.08.02 15:00
1945년 10월 13일, 작달막한 키에 패기만만한 26세의 한 청년이 소화기린맥주(동양맥주, 현 OB맥주의 전신) 평사원으로 첫 출근했다. 경리과로 배속된 정수창이라는 사람이었다.연강 박두병 회장은 광복후 적산기업이 된 소화기린맥주 관리지배인으로 취임했는데, 경성고상 은사인 이인기 교수에게 ‘쓸만한 젊은이’를 추천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인기 교수는 박두병 회장의 경성고상 9년 후배이기도 했던 정수창을 추천했다.정수창은 최인철, 윤현주, 명주현 등과 함께 박두병 회장과 고락을 같이한 전문 경영인중 한명이다. 향후 두산그룹 회장의 자리에 오르며, 국내 재계 역사상 첫 '전문경영인 시대'를 연 인물이기도 하다.경성고상을 마친2023.08.02 15:00
1963년 9월 25일, 연강 박두병 회장은 70일간의 세계일주를 떠났다.이 여행길에는 정수창 당시 동양맥주 전무가 동행했다. 외환 사정이 좋지 않아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던 시절에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외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여행 목표는 동양맥주의 공장시설 확장에 필요한 기재 도입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박두병 회장이 심혈을 기울인 언론사업 ‘합동통신’과의 계약 통신사, 즉 독일 dpa, 프랑스 AFP, 영국 로이터를 돌아보며 그들과 관계 개선을 꾀하는 목적도 있었다.아울러 전 세계를 돌면서 각국의 맥주를 시음하며 동양맥주의 해외 시장개척의 전망을 파악하는 것도 겸했다. 박승직 상점 문을 닫고 두산상회를 설립하면서 이미2023.08.02 15:00
은거한 거상 매헌 박승직의 하루 일과 즐거움은 막내손자 용현(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을 돌봐주는 것이었다.“이놈 봐라, 이놈 봐라.” 그는 용현이 세발자전거를 타면 마당을 왔다갔다 거닐며 대견한 듯이 그렇게 혼자 웃었다. 그러다 때로는 손자를 번쩍 안아 들고 자신의 귓밥을 만지게 했다.용현은 집안의 귀염둥이였다. 매헌은 산책을 나갔고, 부인 명계춘 여사는 부엌에서 조반을 돌보는 어느날 아침, 연강은 용현을 무릎에 앉혀 놓고 목욕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하루가 시작된 아침 풍경의 하나였다. 이제 학교로 갈 형들, 누나는 그 준비에 바쁘지만 그는 마냥 즐거웠다.<연강 박두병,2023.08.02 15:00
연강 박두병 회장이 살던 집안에는 그가 승마하던 때 쓰던 말 채찍이 여럿 남아있었다.그가 말 채찍을 손에 쥘 때는 말을 탈 때와 함께 또 다른 목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곧 자녀들의 버릇을 고쳐줘야 할 때였다. 그가 자주 말 채찍을 자주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들었을 때 맞는 아들은 채찍의 두려움을 뼈 아프게 느껴야 했다고 한다.이유가 있었다. 용곤‧용오‧용성‧용현‧용만‧용욱과 딸 용언 등 그의 자녀 6남 1녀중 대부분은 해방 후부터 6.25 동란까지 중학교,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 과정에 있었다. 자녀 교육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됐던 시기였던 것이다.중심을 잡기 위해 박두병 회장은 엄격한 교육태도를 전개2023.08.02 15:00
“언젠가는 OB그룹(현 두산그룹)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간산업을 담당해야 한다.”연강 박두병 회장이 틈날 때마다 주변 지인들에게 밝힌 말이다.동양맥주(현 오비맥즈) 사업에 온 힘을 기울여온 박두병 회장은 하지만 맥주사업을 넘어 “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중화학 공업 진출을 꿈꿔왔다. 이는 산업의 흐름을 읽는 박두병 회장의 눈이 탁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아버지 매헌 박승직 창업주로부터 박승직상점 사업을 물려받은 그가 두산상사를 통해 처음 시작한 사업이 무역업이다. 부족한 물자를 해외에서 들여오기 위해 시작했지만, 장차 우리 산업이 성장하면 수출을 많이 할 것이며,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역업을 알2023.08.02 15:00
“별일 없는가?”1973년 8월 3일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박두병 회장이 병실을 방문한 김종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에게 던진 질문이다.한 차례의 위기를 넘기고 병원에 입원한 박두병 회장은 쇠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모든 이들의 문병을 거절했는데, 김종대 부회장만은 출입을 허용했다. 눈을 감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상의 일이 염려됐기 때문이었다.앞서 박두병 회장은 “나 이젠 죽어도 괜찮아. 내가 할 일은 다했어. 하지만 1년만 더 산다면 완전히 마무리를 짓겠는데…”라는 말로 일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기도 했다.김종대 부회장이 문병을 다녀온 다음날 밤 박두병 회장은 눈을 감는다. 향년 63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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