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역외시장서 한때 1365원까지 치솟아...단기 상승폭 과도 경계감

특히 대만 달러화는 지난 2일 거래에서 달러 대비 4% 넘게 상승한 데 이어 5일(현지시각) 거래에서도 한때 5% 가까이 폭등하는 등 2거래일 연속 급등하며 30여 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미국이 관세 협상의 일환으로 대만에 통화가치 절상을 요구했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대만 달러화의 급등세를 촉발했다.
이에 대만 중앙은행에 이어 라이칭더 총통까지 나서며 대만 달러화의 급격한 절상에 대해 긴급 대처에 나섰지만, 시장의 도도한 흐름을 돌려세우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이날 이례적으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외환정책과 관련한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허위 보도를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라이칭더 총통은 "대만의 대미 무역 흑자는 반도체 등 대만이 강점을 가진 기술 제품에 대한 수요 급증에 따른 것이며, 대만이 미국으로부터 한 번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대만 중앙은행과 무역협상판공실도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외환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양진룽 대만 중앙은행 총재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환율 문제는 논의된 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만약 환율이 의제가 됐다면, 우리가 반드시 참석했을 것”이라며, 시장이 과도한 추측을 자제하고 냉정을 되찾을 것을 당부했다.
경상 흑자 급증...중앙은행 대응도 미온적
대만 중앙은행은 미국이 무역 협상의 일환으로 대만 달러화의 절상을 압박하고 있다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시장에서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대만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에 “대만 달러가 내가 본 것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핫머니가 대만으로 유입되고 있고, 중앙은행은 이를 용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이것이 미국의 압박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만은 시장 변동성 완화를 위해 개입에 나서는 ‘관리 변동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대만의 수출이 올해 1분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기업들이 외화 환전을 서두른 점도 대만 달러화 급등의 촉매가 됐다.
대만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내면서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전년 대비 83% 급증했다. 특히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품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지난해 대미 수출은 사상 최고치인 1114억 달러를 기록했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1000억 달러를 상회했다.
원화 등 아시아 통화, '덩달아' 강세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대만 달러가 주도한 아시아 통화의 강세로 신흥국 외환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 외환 지수는 이날 1.2% 상승하며 3주 연속 랠리를 질주했다.
한국 시장이 휴장인 가운데 한국 원화도 이날 역외시장에서 달러 대비 한때 1365원대로 상승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일에만 해도 달러 대비 1440원 선에 거래됐던 원화 가치는 이틀간 5% 넘게 절상됐다.
아시아 통화의 전방위 강세는 최근의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 투자자들이 미국 달러 자산에서 자금을 빼내 다른 투자처로 이동하면서 달러화는 지난달 미국 장기 국채 및 주식 시장과 함께 하락세를 보였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달러에 대한 압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경기 침체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면서 “아시아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달러 예금을 유지할 유인과 위험의 균형이 크게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골드만은 중국 위안화, 대만 달러 및 말레이시아 링깃 등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통화들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또한 아시아 통화 가치 절상이 이 지역으로의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증가와 수입 물가 하락 등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통화가치 상승은 수출 기업에 타격을 주고 주식 시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내수 부진으로 성장 둔화가 가시화한 가운데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까지 더해질 경우 경제 주름살이 더 깊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국정 공백’ 사태에 따른 정치적 불안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다른 아시아 통화들에 비해 원화의 절상 압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 시장이 휴장인 틈을 타 시장 변동성이 한층 컸던 만큼 지난 이틀간처럼 탄력적인 원화 강세가 계속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하루 2% 넘는 원화 절상 속도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라며 “연휴 기간에 장이 엷은 상황에서 변동성이 과장됐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 위안화나 대만 달러 등 다른 아시아 통화들의 흐름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원화의 추가적인 절상 여지는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