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주요 제조국에 대해 예고한 고율 관세 시행 시점을 다시 한 번 연기하며 통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을 포함한 22개국이 새롭게 관세 통보를 받은 가운데 미국의 오랜 동맹인 일본까지도 예외 없이 25%의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BBC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총 22개국에 대해 최대 40%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경고하며 다음달 1일까지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면서 “이는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친구와 적을 가리지 않고 발표한 일괄 관세 조치의 연장선으로 일본 무역장관이 워싱턴을 7차례나 방문했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고 1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 "한국·일본도 예외 없어"…우방국 압박 수위 강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의 이번 조치를 “매우 유감스럽다”고 반응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미 지난 4월 관세 발표 직후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기업 지원을 위한 수백 개의 상담 센터를 설립했다. 그러나 미국산 쌀 수입 확대나 국방비 증액 요구 등 미국 측의 일방적 요구에는 선을 긋고 있다.
일본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단기간 내 무역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스퍼 콜 일본 경제학자는 “일본은 준비가 돼 있고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신뢰할 수 있는 합의를 내놓지 않으면 일본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승자는 시간 번 협상가…패자는 아시아 제조업
관세 발효 시한이 다음달 1일로 연기된 만큼 시간은 모든 국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수안 텍 킨 유나이티드오버시즈은행(UOB) 리서치 총괄은 “긍정적으로 보면 각국이 시한 전까지 다시 협상에 나설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미국의 잇단 연기 조치가 협상력 약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데이비드 잭스 싱가포르국립대(NUS) 경제학 교수는 “미국이 협상력을 과시하려다 오히려 허점을 드러낸 셈”이라며 “이로 인해 중국이 더 안정적인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과의 협상 마감 시한이 다음달 13일로 다소 여유 있는 상황이다. 알렉스 카프리 싱가포르국립대 강사는 “트럼프가 외교 채널이 아닌 온라인으로 관세 통보를 공개한 것은 정치적 쇼로 보인다”며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중국에는 큰 선물이 됐다”고 말했다.
◇ 아시아 제조업 기반에 ‘직격탄’…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확대
트럼프발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이는 것은 아시아의 수출 제조업 기반이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협상을 가장 먼저 타결했지만 여전히 최대 4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받고 있고 캄보디아는 35% 관세 위협을 받으며 절박한 협상에 나서고 있다. 양국 모두 가격 경쟁력이 생명인 의류 산업 등 저부가가치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지니고 있어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국가가 중국산 제품을 우회 수출하는 경로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부품 수입과 완제품 구분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카프리 강사는 “글로벌 공급망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려면 매우 정교한 기술과 수많은 물류 파트너, 제3자 기관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대응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