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에너지 혈관, 세계 경제 쥐고 흔든다’, 하루 1400만 배럴 흐르는 '숨은 전쟁터'
"러시아發 관로 차단에 유럽 비상…중국은 '말라카 우회로' 사수"
"폭발로 멈춘 노드스트림, 2년 닫힌 이라크 관로…에너지 지도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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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관로가 단순한 수송 수단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정치적 영향력을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국에서는 관로를 통해 연간 140억 배럽의 석유 제품이 수송되며, 이는 전체 석유 운송량의 70%에 이른다고 했다.
관로들은 조용히 세계 석유와 가스 대부분을 비할 데 없는 효율성과 신뢰성으로 수송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러시아의 드루즈바나 캐나다의 키스톤 같은 시설들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해상 요충지를 우회하고 공급 회복력을 강화하도록 설계된 에너지 안보의 동맥이라고 평가했다.
◇ 러시아 관로, 유럽 에너지 의존도 심화
분석 대상 관로 중 러시아가 운영하는 드루즈바 관로는 일일 최대 140만 배럴의 원유 수송 능력을 보유해 세계 최대 규모다. 1964년 완공된 이 관로는 총 연장 4000km에 이르며 러시아에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거쳐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독일로 이어진다. 이 관로는 일련의 본선과 중간 펌핑 스테이션, 총 150만㎥ 규모의 원유 저장 탱크로 구성된다.
'우정의 관로'로도 불리는 드루즈바는 소비에트 유전을 바르샤바 조약기구 시장과 연결하려고 건설됐지만 지금도 전략적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전쟁 관련 차질과 유럽연합의 공급원 다변화 노력으로 신뢰성이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있지만 러시아 원유의 중부·동부 유럽 진출을 뒷받침하는 핵심 통로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6월 26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이 6월 독일으로 향하는 물량을 16만 톤으로 크게 줄이면서 드루즈바 연결 독일으로 향하는 물량이 급감했다고 전했다.
동시베리아-태평양 관로(ESPO)는 러시아가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해 구축한 핵심 인프라다. 트랜스네프트와 로스네프트가 운영하는 이 관로는 중국으로 일일 10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한다. 2006년 건설이 시작돼 타이셰트에서 스코보로디노까지 연결하는 첫 번째 구간과 스코보로디노에서 태평양 연안 코즈미노만 수출터미널까지 이어지는 두 번째 구간으로 나뉜다.
발트해를 통과하는 노드스트림 1·2호는 러시아 가스의 유럽 직송 루트였지만 현재 가동이 중단됐다. 연간 1100억㎥의 가스 수송 능력을 갖춘 이 관로들은 지난 2022년 9월 폭발로 손상됐다. 노드스트림 1호는 2011년부터 가동됐으나 노드스트림 2호는 2021년 완공됐지만 한 번도 가동되지 못했다.
◇ 대안 공급망 확보 경쟁 치열
캐나다의 키스톤 관로 시스템은 북미 에너지 안보의 핵심축이다. TC에너지에서 분사한 사우스보우가 운영하는 이 시설은 앨버타주 오일샌드에서 미국 정제 시설로 일일 59만 배럴을 수송한다. 총 연장 2100마일에 이르는 이 관로는 네브래스카주 스틸시티를 거쳐 일리노이, 오클라호마, 걸프코스트의 정제 허브로 이어진다.

아제르바이잔에서 터키로 이어지는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관로는 설계 용량 일일 120만 배럴 규모로 카스피해 지역 에너지의 지중해 진출 통로 구실을 한다. BP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운영하는 이 시설은 2005년 가동을 시작했으며 현재 실제 수송량은 일일 60만 배럴 수준이다.
터키의 트랜스 아나톨리아 가스관로(TANAP)는 현재 연간 160억㎥를 수송하며 310억㎥까지 확장할 수 있다.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2020년 TANAP를 "지역 평화 프로젝트"라고 부르며 관로가 연간 최대 320억㎥의 가스 수송 능력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중동에서는 이라크-터키 관로(ITP)가 핵심 구실을 해왔지만 최근 2년간 가동이 중단됐다. 키르쿠크에서 제이한까지 이어지는 986km 구간의 이 관로는 일일 50만~60만 배럴 수송 능력을 보유했으나,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터키에 15억 달러 배상을 명령한 이후 폐쇄됐다.
캐나다의 트랜스 마운틴 관로는 지난해 5월 확장 프로젝트가 완전 가동에 들어가면서 기존 일일 30만 배럴에서 89만 배럴로 용량이 늘어났다. 이 확장은 캐나다 석유 업계의 미국 중심 관로와 정제업체 의존도를 줄이려는 목적이었지만 프로젝트 비용 증가로 인한 높은 통행료 때문에 일부 기업들이 주저하고 있다.
중국-미얀마 석유·가스 관로는 중국이 이른바 '말라카 딜레마'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한 전략적 우회로다. 미얀마를 통과하는 약 800km의 이중 관로는 베이징이 아시아의 가장 취약한 해상 요충지 중 하나를 우회할 수 있게 해준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원유는 미얀마 차욱퓨 항구에서 하역돼 윈난성으로 직접 수송되며, 병행하는 가스관로는 해상 천연가스를 중국과 미얀마 내수 시장에 공급한다.

업계에서는 이들 관로가 단순한 상업 시설을 넘어 국가 간 정치적 영향력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러한 인프라가 국경을 넘나들거나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 말라카 해협 등 병목 지점을 우회할 경우 지정학 갈등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