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플루언서’가 전 세계 소셜미디어와 마케팅 업계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실존 인플루언서와 브랜드 관계자들이 AI로 인한 대체와 시장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며 1일(이하 현지시각) 이같이 보도했다.
◇ “10분 투자로 가상 인플루언서 탄생”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a16z의 올리비아 무어 파트너는 지난달 단 10분 남짓의 작업으로 ‘100% AI 인플루언서’ 계정을 만들었다. 그는 “이 AI 인플루언서가 브랜드·마케팅·엔터테인먼트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또 다른 AI 인플루언서 ‘미아 젤루’는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 윔블던에 등장한 듯한 영상으로 팔로워 15만명을 모은 뒤 가상 인물임이 드러나기도 했다.
◇ 광고시장에 진입한 AI 아바타
패션 브랜드 H&M은 최근 AI로 만든 ‘디지털 트윈’ 모델을 광고에 활용했고 휴고 보스는 5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가상 인플루언서 ‘임마’와 협업했다. 광고업계는 저비용·고효율이라는 장점을 주목하지만 실존 모델과 메이크업·사진·영상 등 촬영 현장의 노동자들이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빅사이즈 의류 모델 가브리엘라 할리카스는 “예술가와 제작자 모두에게 위험하다”며 경각심을 촉구했다.
◇ 소비자 반응과 윤리 논란
그러나 참여율과 수익 면에서는 여전히 인간 인플루언서가 크게 앞서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장조사기관 트윅시에 따르면 실제 인플루언서의 협찬 게시물은 AI 인플루언서보다 2.7배 높은 참여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인간 인플루언서의 게시물 평균 수익은 7만8777달러(약 1억760만 원)였던 반면에 AI 인플루언서는 1694달러(약 230만 원)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AI는 경험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플랫폼의 전략과 사회적 파장
메타와 틱톡 등 빅테크 기업은 AI 기반 콘텐츠 생태계 확장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메타는 사용자 맞춤형 AI 아바타 제작 기능을 내놨으며 전문가들은 앞으로 개인화된 팬 응대까지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저급한 AI 콘텐츠가 넘쳐나는 ‘AI 슬롭(slop)’ 현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슬롭은 원래 돼지 사료, 질 낮은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을 뜻하는 말로 여기에 AI를 붙여 AI가 대량으로 찍어내는 질 낮은 콘텐츠를 비유적으로 부르는 표현이다.
FT는 “AI 인플루언서의 확산은 광고비 절감과 시장 다변화라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실존 창작자들의 생계와 청소년 정신건강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