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명령으로 연방 세액공제 중단, 보조금 완전폐지, 7500달러 혜택 9월 30일 종료

보조금 폐지를 앞두고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지금 사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으로 전기차 구매를 서두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기차 구매를 권하는 이유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면서도 "하지만 전기차가 적합한 가정은 미국 전체의 절반 정도"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지난 20일 서명한 행정명령을 통해 당초 예고한대로 연방 정부 차원의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이에 미국 자동차 업계와 환경 단체는 물론 일부 공화당 의원들까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연방 하원은 이른바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법'을 통과시켰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마련한 법안은 법인세·소득세 등의 대규모 감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 전기차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장거리 통근자, 장거리에 무거운 짐을 싣고 이동하는 사람, 집이나 직장에서 충전이 어려운 사람, 그리고 중고차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기차 사기를 주저한다.
◇ 4만 달러 미만 전기차 시대, 테슬라 독주 종료
대부분 운전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신형 전기차는 곧 사라질 세액 공제 혜택을 제외하고도 4만 달러(약 5500만 원) 미만에 구입할 수 있다. 많은 전기차가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도 더 많아지고 있다.
따라서, 테슬라가 더 이상 저렴하면서도 고성능 전기차를 찾는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기아, 현대의 우수한 엔트리급 모델들이 이미 출시됐고, 닛산과 스바루의 유망한 모델들도 곧 출시될 예정이다.
이러한 차량은 빠르게 충전되고, 주행 거리는 약 480㎞이며, 최신 첨단 기술이 모두 탑재돼 있다. 특히 전기차의 특징인 숨 막힐 듯한 가속력이 돋보인다.
자동차 서비스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의 에린 키팅 수석 분석가는 원래 전기차를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대 아이오닉 9을 직접 타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평소처럼 빠르게 운전하다가 갑자기 '와,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기차의 강력한 힘과 부드러운 주행감 때문에 놀랐다는 것이다.
요즘 나오는 전기차는 여러 면에서 같은 가격대 가솔린 차량보다 성능이 좋다. 마치 재래식 난로 대신 보일러를 쓰는 것처럼, 한번 전기차를 타보면 가솔린차로 돌아가기 어렵다. 게다가 주유비 걱정도 없고 엔진오일도 갈 필요가 없다.
미국 신차의 평균 판매 가격은 무려 4만 9000달러(약 6800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에 비해 4만 달러 미만의 다양한 전기차 모델은 저렴한 것처럼 보인다. 쉐보레 이쿼녹스, 포드 머스탱 마하-E, 그리고 새롭게 디자인된 2026년형 닛산 리프와 같은 차량들은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다.
◇ 실생활 적합성과 경제성 고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기차가 나에게 맞는지 알아보려면 평소 차를 어떻게 쓰는지 생각해보면 된다고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는 멀리 못 간다"며 걱정하지만, 미국 연방도로청 자료를 보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54㎞만 운전한다. 이 정도는 집 콘센트로 밤새 충전하면 충분하다. 전기료도 기름값보다 훨씬 싸다.
운전을 많이 한다면 집에 더 빠른 충전기가 필요할 것이다. 차고에 건조기나 히터를 꽂을 수 있는 240볼트 콘센트가 없다면, 전기 기사가 연결해 줄 수 있다. 다만, 겨울철 기온이 매우 낮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주행 거리가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대 25% 이상까지 줄어들 수 있다.
평생을 도로에서 보내는 사람들이라면 주행 거리에 관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공공 고속 충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좋다.
전기차 충전이 주유보다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급속충전기 성능이 좋아져서 멀리 나갔을 때도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면 충전이 된다.
새 전기차를 사면 기름값과 정비비를 합쳐 약 50%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키팅 분석가는 "요즘 새차가 워낙 비싸서 미국인들이 전기차를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고차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인기 있는 중고 가솔린차는 평균 2만9000 달러(약 4000만 원)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단점도 있다. 보험료가 가솔린차보다 50% 정도 비싸고, 무겁고 가속이 빨라서 타이어가 더 빨리 닳는다.
더욱이 요즈음은 배터리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텔레매틱스 회사 지오탭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는 전기차 자체보다 수명이 길어서 차를 폐차할 때까지 배터리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
◇ 현대차·기아, 미국에서 테슬라 추격
이런 가운데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시장 성과가 주목받고 있다. 2024년 현대차는 미국에서 6만 1727대의 전기차를 판매했고 기아차는 5만6099대를 판매하여 총 11만7826대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 브랜드인 포드는 9만7865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현대차·기아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현지 주요 완성차 업체를 제치고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 보조금 폐지 후 전망
콕스 오토모티브의 분석가들은 연방 정부 보조금 종료 후에도 전기차 판매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키팅은 말한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상황이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과속 방지턱에 가깝다고 말한다.
일부 주에서는 자체 보조금을 계속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전기차를 생산했기 때문에 현재 제조업체들은 파격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제조업체 보조금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전기차가 계속 나오면서 가격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포드, GM, 슬래이트 오토 같은 회사들은 2026년 말까지 더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키팅 분석가는 "전기차 기술은 지금도 충분히 좋다"고 말했다. 640㎞ 주행이나 더 빠른 충전 같은 기술이 10년 후에는 나올 것이지만, 지금 기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키팅에 따르면 전기차 확산의 진짜 걸림돌은 기술이 아니라 '가격'과 '익숙함'이라고 한다. 새로운 기술을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직 전기차가 낯설고 가격도 부담스러워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