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형 '다이아몬드 래피즈' 개발 중단…16채널 고성능 모델에 '올인'
"코어 시대 가고 대역폭 시대 왔다"…AI 인프라 주도권 탈환 위한 고육지책
"코어 시대 가고 대역폭 시대 왔다"…AI 인프라 주도권 탈환 위한 고육지책
이미지 확대보기현재 주력인 '그래나이트 래피즈(Xeon 6700P)'의 후속작을 없애고, 오직 고대역폭 16채널 플랫폼에만 사활을 걸기로 한 인텔의 결정.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는 이 '조용한 혁명'의 5가지 배경을 분석했다.
1. 코어 경쟁의 종말…"이젠 대역폭이 깡패"
AI 시대의 권력은 CPU '코어(Core)'에서 '메모리 대역폭'으로 이동했다. 인텔의 이번 결정은 "8채널 대역폭으로는 미래 AI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했다.
AI 학습과 거대언어모델(LLM) 추론은 방대한 데이터를 쏟아낸다. PCIe Gen6와 CXL 등 차세대 인터페이스가 요구하는 데이터 처리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좁은 8차선 도로(8채널)로는 아무리 빠른 CPU도 병목에 갇힌다. 인텔은 8채널 다이아몬드 래피즈가 출시될 2026년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임을 직감하고, 과감히 도려내는 쪽을 택했다.
2. OEM들의 안도 "두 마리 토끼는 무리였다"
서버 제조사(OEM)들은 이번 결정을 오히려 반긴다. 델(Dell), HP 등에게 8채널과 16채널이라는 상이한 두 플랫폼을 동시 개발하는 건 비용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악몽이었다.
줄어드는 범용 시장을 위해 저가형 보드를 유지하면서, 고성능 AI 보드까지 설계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인텔의 로드맵 단일화는 파트너사들에게 "고성능 단일 플랫폼에 집중하라"는 명확한 신호를 줬다. AI 인프라 투자에 올인하는 OEM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 셈이다.
3. 효자 상품이었는데…스스로 싹 잘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폐기된 라인업의 전신(前身)인 8채널 제온 6700P는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다. 최상위 모델보다 머신러닝 벤치마크(MLPerf) 제출이 더 활발할 정도로 실용성을 인정받았다.
저렴한 보드와 단순한 설계, '가성비'는 AMD의 고가 정책에 맞서는 인텔의 무기였다. 하지만 인텔은 '현재의 인기'에 취해 '미래의 생존'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가성비 모델로는 2~3년 뒤 AI 폭증 시대를 버틸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가장 잘 팔리는 라인업의 후속작을 스스로 끊어내는 강수를 뒀다.
4. 경영진의 냉혹한 판단 "어설픈 타협 없다"
이 결정의 배후엔 인텔 내부의 치열한 전략 재검토가 있었다. 립부 탄(Lip-Bu Tan) CEO 등 경영진은 그간 인텔의 복잡한 설계 방향에 우려를 표해왔다.
데이터센터 그룹의 새 리더십은 차기 제품군을 원점에서 재평가했다. 결론은 "어설픈 타협은 없다"는 것. 8채널 다이아몬드 래피즈는 미래 경쟁력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고, 인텔은 라인업 다양성 대신 '확실한 고성능' 하나에 집중하는 것으로 노선을 정리했다.
5. 복잡성 버리고 '속도'…AMD식 전략 벤치마킹
지난 10년간 인텔 제온 라인업은 '복잡함' 그 자체였다. 수십 개의 변종 모델은 개발 속도를 늦추는 주범이었다. 반면 경쟁사 AMD는 간결한 라인업으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인텔은 이제 AMD 전략을 벤치마킹한다. 16채널 단일 플랫폼은 엔지니어링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하나의 소켓, 하나의 설계로 하이엔드부터 미드티어까지 커버하며 신제품 출시 속도(Time-to-Market)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다양성을 버리고 속도를 택했다.
'보급형' 시대 끝, 승부는 하이엔드에서
'저렴한 제온'의 시대는 끝났다. 인텔이 중저가 시장을 비우면서 AMD가 그 빈틈을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텔은 더 이상 '보급형 방어'에 연연하지 않는다.
앞으로 서버 시장 표준은 '16채널'이다. 더 넓은 메모리 대역폭이 곧 AI 성능이다. 인텔의 8채널 포기는 단순한 모델 단종이 아니다. "데이터센터의 중심은 이제 CPU가 아닌 GPU와 메모리"라는 사실을 반도체 종가(宗家)가 공식 인정한 사건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전열을 가다듬은 인텔이 AI 파도 위에서 기술 리더십을 증명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