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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지역 다자주의의 유혹, 억지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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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지역 다자주의의 유혹, 억지의 공백

다극화 시대의 환상과 한국이 선택해야 할 자체 핵무장에 의한 자력 억지의 대전략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을 비롯한 지도자와 관리들이 지난해 9월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sation) 정상회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을 비롯한 지도자와 관리들이 지난해 9월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sation) 정상회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세계 질서는 지금 ‘재편’이 아니라 ‘이완’의 국면에 있다. 미국이 주도해온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약화되고, 다자주의는 선언과 회의의 언어로만 연명하는 가운데, 실제 힘의 배분은 점점 더 노골적인 군사력과 기술력, 그리고 결단의 문제로 수렴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일부 서구 담론은 글로벌 다자주의의 쇠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지역 다자주의’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처방은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안보 현실에는 치명적인 공백을 남긴다.

이에 글로벌이코노믹은 이 글을 통해 앞서의 서구 담론이 대안으로 제기한 지역 다자주의가 왜 한국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중심으로 한 자력 억지 대전략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지를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다자주의의 쇠퇴와 지역주의의 착시


글로벌 다자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트럼프 2기의 일방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 국제기구들은 이미 21세기 기술·안보·패권 경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고, 미중 경쟁과 러시아·북한의 핵무장 현실 앞에서 사실상 무력화돼 있었다. 이 공백을 ‘지역 협력’으로 메우자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역 다자주의는 힘의 비대칭이 극단적인 지역에서는 오히려 약소국의 선택지를 줄인다. 동아시아는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와 다르다. 중국이라는 단일 초강대국이 경제·군사·외교 전 영역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 속에서, 지역 협력은 곧 중국의 영향권 편입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대만·한반도 비교: 지역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대만은 지역 다자주의의 실패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사례다. 대만해협의 긴장은 ASEAN이나 역내 포럼에서 관리되지 않는다. 중국은 이를 ‘내정 문제’로 규정하고, 다자적 중재 자체를 거부한다.

한반도 역시 다르지 않다. 북한의 핵무장은 이미 완료 단계에 들어섰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사실상 용인하거나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북아 다자 안보 협력’은 현실적 억지 수단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주는 수사에 가깝다.
유럽이 지역 다자주의로 일정 수준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핵우산과 나토라는 압도적 군사 억지가 전제돼 있었기 때문이다. 억지가 없는 다자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핵과 중·러 연계: 다자주의가 무력화된 현실


북한은 이미 핵무장을 협상 카드가 아닌 체제의 핵심 자산으로 규정했다. 최근 일본 교도통신을 비롯한 여러 외신들이 지적하듯, 북한이 외교에 나설 경우 그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 보유의 정치적 승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저지할 의지도, 실질적 수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의 핵 능력은 미·일·한 동맹을 견제하는 전략 자산으로 기능한다. 이 구조에서 다자 회담, 지역 협력, 중재 외교는 모두 실질적 억지를 제공하지 못한다.

핵을 보유한 상대를 상대로 핵이 없는 상태에서 외교만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여러 차례 현실에서 부정됐다.

다극화의 본질: 전쟁이 아니라 ‘유혹’의 증가


다극화는 전면전의 빈도를 낮출 수는 있지만, 회색지대 도발과 국지적 침공의 유혹을 키운다. 상대가 핵무장을 갖추고 있고, 동맹의 개입이 불확실해 보일 때 그 유혹은 커진다.

중국의 대만 포위 훈련, 북한의 전술핵 실전 배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모두 같은 교훈을 준다. 억지가 모호할수록 침공은 계산 가능한 선택지가 된다.

한국의 핵심 질문: 동맹만으로 충분한가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동맹은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억지 수단이 아니다. 미국의 확장억지는 정치·전략·국내 변수에 의해 언제든 조건부로 작동할 수 있다.

한국이 동맹을 강화할수록, 동시에 동맹이 흔들릴 경우를 대비한 자력 억지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동맹을 약화시키는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동맹의 신뢰도를 높이는 선택이다.

자체 핵무장: 선택이 아닌 구조적 귀결


한국의 자체 핵무장은 감정적 대응이나 일회성 선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북한의 핵무장 완료, 중국·러시아의 전략적 묵인, 미국 확장억지의 조건부 성격이라는 세 구조적 조건이 만들어낸 필연적 귀결이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 보유국을 상대로 장기 억지를 유지하는 국가는 없다.

핵은 버튼이 아니라 체계다


자체 핵무장은 단순히 무기를 보유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휘통제, 생존성, 산업 기반, 국제 관리 체계, 그리고 정치적 결단이 결합된 국가 시스템이다. 따라서 한국의 핵무장 논의는 군사 기술을 넘어 산업·과학·제도·외교 전략 전체와 연결돼야 한다.

산업·기술 역량과 핵억지의 결합


반도체는 군사·AI·지휘통제의 기반이고, AI는 핵 억지 체계의 신경망이며, 양자 기술은 암호와 탐지의 핵심이다. 조선과 방산은 지속적 전력 운용의 토대다.

자체 핵무장은 이러한 산업 역량이 뒷받침될 때만 실질적 억지가 된다. 핵과 산업은 분리된 의제가 아니다.

지역 다자주의의 위험한 귀결


한국이 지역 다자주의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결과는 명확하다. 중국은 이를 전략적 중립이 아닌 압박 가능한 모호성으로 해석할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채 협상력을 높일 것이다. 동맹은 한국의 전략적 결단을 의심하게 된다.

자력 억지는 동맹을 배제하지 않는다


자체 핵무장은 한미동맹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의 전략적 공백을 메우는 장치다. 동맹은 신뢰를 전제로 작동하고, 신뢰는 책임 있는 억지 능력에서 나온다.

한국이 제시해야 할 국제적 논리


한국의 핵무장은 확산이 아니라 안정화 전략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조건부·단계적 접근, 국제 관리와 투명성, 역내 핵 균형 회복 등 이 세 가지를 결합한 논리가 필요하다.

왜 지금인가


북한의 핵 능력이 더 고도화되기 전에, 중국의 지역 질서 재편이 완성되기 전에, 미국의 전략 우선순위가 다시 이동하기 전에 한국은 결단해야 한다.

선택을 미룰수록 비용은 커진다


핵무장은 언제나 비용이 따른다. 그러나 핵이 없는 상태에서 핵 위협을 받는 비용은 비교 불가능하게 크다. 역사는 항상 늦은 결단에 더 큰 대가를 요구해왔다.

2036년 세계 5위 국가를 향한 조건


한국이 10년 후 세계 5위 선진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안보는 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 자체 핵무장은 그 전제 조건의 핵심 축이다.

다자주의의 언어를 넘어 억지의 현실로


지역 다자주의는 선언일 수는 있어도, 억지는 아니다. 한국이 직면한 현실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결단의 대상이다. 동맹을 중심으로 하되, 동맹에만 의존하지 않는 자력 억지. 그 중심에 자체 핵무장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회의가 아니라, 더 분명한 전략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