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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뜨거운 감자 국민배당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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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뜨거운 감자 국민배당금제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국민배당금제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인공지능(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이 끌어낸 결과가 아니다"라며 이를 국민에 환원하기 위한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다. 김용범 실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 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응당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이 과실은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은 기반 위에서 나온 것"이라며 "과실의 일부는 구조적으로 국민에게 환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배당금제의 사상적 기초는 '공유 자산(The Commons)'에 대한 권리에서 출발한다. 토지나 천연자원, 그리고 인류가 축적해온 기술적 유산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다. 18세기 말 미국의 건국 시조 중 한 명인 토마스 페인은 그의 저서 '토지 정의(Agrarian Justice)'에서 국민배당의 초기 형태를 제안했다. 그는 지표면이 인류 공동의 재산이었으나 사유재산권의 도입으로 많은 이들이 생존 수단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는 공동체에 '지대'를 지불해야 하며, 이를 재원으로 모든 시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여 자연권 상실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공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더글러스는 '사회신용(Social Credit)' 이론을 통해 국민배당을 체계화했다.국민배당'이라는 용어 자체는 192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 C.H. 더글러스(C.H. Douglas)의 '사회신용(Social Credit)'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현대의 생산력은 조상들이 일궈놓은 과학 기술과 문화적 유산 덕분이므로,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은 특정 자본가가 아닌 모든 시민에게 배당금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대의 생산 능력이 개별 노동자의 노력보다는 과거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Cultural Heritage)'과 과학 기술에 의해 결정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그 결실인 생산물은 자본가나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유산을 상속받은 모든 시민에게 '국민배당'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 역시 국민배당과 궤를 같이하는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제안했다. 이는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복지 행정 비용을 절감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최저 생계선 아래의 시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지원하여 소비 기반을 확보하려는 실용적 접근이었다. 이는 최근 실리콘밸리의 테크 거물들 즉 샘 올트먼 등이 주장하는 "AI가 창출한 부를 시민에게 분배하자"는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현대에 이르러 국민배당 논의는 '데이터'와 '지능'이라는 새로운 공유 자산으로 확장되고 있다.
디지털 경제 체제에서 기업이 부를 창출하는 원천인 데이터는 사용자들의 활동에서 발생한다. 구글이나 메타, 그리고 최근의 생성형 AI 기업들이 학습하는 방대한 자료는 인류 공동의 지적 산물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이 거두는 막대한 이익 중 일부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데이터 주권 측면에서 타당성을 얻는다.과거 산업혁명이 노동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면, 현재의 AI 혁명은 노동의 양적 소멸을 예고한다. 자본이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한계비용 제로' 사회로 진입할수록, 노동 소득에 의존하는 기존의 분배 모델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소비 주체가 사라진 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기본소득' 혹은 '배당'을 통한 유효 수요 창출이 자본주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국민배당금제는 이론의 영역을 넘어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실험되고 있다.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는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1976년 주 헌법을 개정하여 석유 수익의 일부를 기금으로 적립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주민들에게 매년 배당한다. 이는 자원을 '공유 부(Wealth of the Commons)'로 정의한 경제학적 승리이자, 실제 지역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핀란드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무작위로 추출된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결과적으로 노동 의욕을 꺾지 않으면서도 삶의 질과 사회적 신뢰를 높인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반면 스위스는 2016년 전 국민 기본소득 지급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재원 조달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부결된 바 있다. 이는 제도의 당위성만큼이나 재정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함을 시사한다. 에스토니아 등 디지털 선진국에서는 '디지털 시민권'과 연계된 배당 논의가 진행 중이다. 실리콘밸리의 일부 기술 관료들은 '오픈 AI' 수익의 공유화 등 테크 기반의 배당 모델을 설계하고 있다.

국민배당금제는 단순히 부유한 자의 것을 나누어 갖는 시혜적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소유한 토지, 환경, 지식, 기술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각자의 '지분'만큼 돌려받는 경제적 권리의 실현에 가깝다.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는 '노동-임금-소비'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선순환 고리가 끊어지는 시대에 '자산-배당-소비'라는 새로운 경제 순환 모델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거대한 기술적 진보가 특정 소수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사회 전체의 후생 증대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경제철학적 사고에 기초한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는 주류 경제학, 즉 신고전파적 전통을 계승하는 학계의 시점은 국민배당금제에 대하여 이론적 흥미와 실무적 회의론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주류 경제학이 본 제도를 분석하는 핵심 논거는 크게 네 가지 차원으로 요약된다. 그 첫째가 노동 공급의 탄력성과 근로 유인 저해론이다. 신고전파의 전통적인 ‘여가-소득 선택 모형(Leisure-Income Trade-off Model)’에 의거할 때, 무조건적인 소득의 수혜는 노동 공급의 임계치를 낮출 개연성이 농후하다.

첫째, 소득 효과(Income Effect)에 의해 비노동 소득이 발생함에 따라 개인은 노동보다는 여가를 선호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둘째, 배당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가 병행될 경우, 추가 노동에 따른 한계 효용이 감소하는 대체 효과(Substitution Effect)가 발생하여 경제 전체의 생산적 활력을 저해할 수 있다.

재정적 지속 가능성과 자원 배분의 효율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재정적 가용 자원의 한계성과 기회비용의 문제이다.보편적 배당은 한정된 국가 예산을 전 국민에게 기계적으로 분할함으로써, 정작 집중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역량을 희석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자원의 최적 배분을 지향하는 경제학적 효율성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선별적 복지(Targeted Welfare)가 지닌 한계 효용 극대화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세번째 논점은 시장 왜곡과 거시경제적 불안정성 현금성 자산의 대규모 유입은 총수요를 급격히 자극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특히 필수재 시장에서의 물가 상승은 배당금의 실질 구매력을 잠식하여 정책 효과를 무력화할 수 있다.기업의 초과 이윤을 재원으로 강제할 경우, 기업은 조세 회피를 위해 투자를 축소하거나 비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등 비효율적인 지대 추구 행위(Rent-seeking)에 몰입하게 되어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을 우려가 크다. 제2의 기계 시대’로 불리는 작금의 AI 혁명기에는 주류 학계 내부에서도 전향적인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그레고리 맨큐(N. Gregory Mankiw) 등 일부 석학들은 기존의 복잡다단한 복지 행정 체계보다는 ‘기본소득과 단일세율(Flat Tax)’의 결합이 오히려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는 ‘시장 친화적 분배’가 될 수 있음에 주목한다. 노동 소득 분배율이 극단적으로 하락하는 미래 사회에서 국민배당은 자본주의 체제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 유지 비용’으로 재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은 국민배당금제를 재정적 위험과 노동 윤리의 해체를 수반하는 모험적 시도로 규정하면서도, 전통적인 분배 기제가 작동 불능에 빠질 미래를 대비한 ‘최후의 보루’로서 그 논의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이성적 신중함과, 기술 진보라는 거대한 조류 사이에서 주류 경제학이 마주한 실존적 고뇌를 방증한다.

문제는 국민적 합의이다. 사상적 논란이 많은 사인인 만큼 충분한 토론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