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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아브라함 협정 "트럼프 웅대한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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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아브라함 협정 "트럼프 웅대한 구상"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백악관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백악관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아브라함 협정, 트럼프의 웅대한 구상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비극의 씨앗은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에서 잉태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 고대 근동의 척박한 땅을 걷던 한 족장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라는 세계 3대 유일신교의 공통 조상으로 추앙받는 아브라함. 그러나 그의 위대한 믿음 이면에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당대 인류의 보편적이나 맹목적인 '아들 욕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브하마의 본처인 사라는 오랜 세월 아이를 갖지 못했다. 초조함에 지친 사라는 자신의 여종인 하갈(이슬람 전승에서는 하자와/하와로도 불리나 성서적 기원은 하갈)을 남편의 품에 들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렇게 아브라함과 여종 사이에서 첫째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기적처럼 사라가 늦둥이 아들 '이삭'을 잉태하면서 비극의 막이 오른다. 질투와 생존의 위협 속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은 척박한 광야로 쫓겨나고 말았다. 광야로 내쳐진 이스마엘은 훗날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남은 이삭은 유대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한 사람의 얄팍한 아들 욕심,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이복형제간의 원한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멈추지 않는 유혈 낭자한 '중동 전쟁'의 르포이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반목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수천 년 전 광야에서 시작된 정통성이라는 이름의 서사적 저주인 셈이다. 이 오래된 저주의 땅에, 비지니스맨의 감각과 이단아적 기질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번 자신의 '웅대한 구상'을 펼쳐 들었다. 바로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의 확대다.

트럼프는 2020년 집권 1기 당시, 미국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끌어내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협정의 이름에 '아브라함'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스마엘의 후손(아랍)과 이삭의 후손(이스라엘)이 공통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름 아래 수천 년의 반목을 끊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실로 거창하고도 수사학적인 명분이었다. 이 협정은 수십 년간 중동 외교의 철칙으로 여겨졌던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는 이스라엘과의 평화도 없다'는 공식을 깨부순 파격 그 자체였다.

2026년 이 시각 이란과의 종전 협상이라는 거대한 체스판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한번 '아브라함'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핵 문제 추가 협상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추진하자, 미국 내 공화당 강경파들은 "이란의 핵 폐기가 후순위로 밀렸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실패한 핵 합의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 상황이다. 이 대목에서 트럼프 특유의 지정학적 승부수가 등장한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튀르키예, 파키스탄 등 이슬람권의 핵심 무게추를 담당하는 국가들을 향해 "이란과의 종전을 원한다면 아브라함 협정에 의무적으로 서명하라"는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제안이 아니다. 이란과의 적당한 타협을 향한 국내의 거센 비판을, '이스라엘과 전 아랍 세계의 완전한 수교'라는 중동 질서의 근본적 재편이라는 더 크고 화려한 트로피로 덮어버리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셈법이다. 강경파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중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합의가 될 것"이라며 즉각 태도를 바꾼 것은 이 구상의 정치적 폭발력을 방증한다.

트럼프의 이 웅대한 구상은 수천 년 묵은 모래폭풍 앞에서 가혹한 현실 검증을 앞두고 있다. 비즈니스 딜(Deal)처럼 모든 것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트럼프의 실용주의적 접근이, 피와 종교로 얼룩진 아브라함의 후예들을 온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무엇보다 가자 전쟁 이후 아랍 민중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된 팔레스타인인들의 피와 눈물이 가장 큰 장벽이다. 이슬람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손을 잡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사우디 등 주요국은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전제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한 되돌릴 수 없는 로드맵'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자국 내 극우 세력에 기대어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내각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신념과 신념이 부딪히는 이 교착 상태에서, 전화선 너머로 "아직 거기 있느냐"며 농담을 던지는 트럼프의 가벼움은 중동의 무거운 현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아브라함 협정은 분명 위대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종교적 대의명분보다 경제적 실리와 첨단 기술의 교류, 안보 협력이 더 중요하다는 현대적 가치관을 중동 한복판에 이식하려는 대담한 실험이다. 이란이라는 공통의 위협 앞에서는 오랜 원수도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만약 트럼프의 압박이 통하여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아브라함 협정에 서명한다면, 이는 이슬람권 전체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영구적으로 승인하는 불가역적인 역사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구약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이스마엘과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함께 모여 그의 장례를 치렀다. 평생을 갈라져 살았던 이복형제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잠시나마 원한을 내려놓고 하나의 핏줄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거친 압박과 거래의 기술이 21세기 중동에 그 장엄한 화해의 장면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한 인간의 욕심이 낳은 4,000년의 깊은 원한이라는 모래성 위에 지어진 정치적 신기루에 불과할 것인가. 트럼프의 '웅대한 구상'이 던진 주사위는 이미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제 전 세계는 수천 년 전 한 장막에서 시작된 가족사가, 어떻게 현대 지정학의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지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다. 중동의 태양 아래, 진정한 평화라는 이름의 기적이 잉태될지, 아니면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뿌려질지 역사의 시계는 다시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