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이번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날카롭게 부딪히는 지점은 단연 호르무즈 해협이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이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불과 39km에 지나지 않지만,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0%가량이 통과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의 목줄'이다. 이란은 최근 이 좁은 병목 구간에 대한 지정학적 지배력을 무기화하여, 이란 영해와 인접 수역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Toll)'를 징수하겠다는 전례 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는 단호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어떠한 통행료도 없이 양방향 무제한 배송을 위해 즉각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이 부설한 수중 기뢰의 완벽한 제거를 촉구하며, 그 대가로 미국의 전례 없는 해상 봉쇄를 해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란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란 측 소식통들은 합의문 초안 어디에도 '통행료 면제'나 '무조건적 개방'과 같은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이란이 통행료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한 금전적 수익 창출에 있지 않다. 살인적인 경제 제재로 인해 정상적인 원유 수출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해협 통제권을 실력으로 입증하여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감을 강제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항행의 원칙이 훼손되고 이란이 해상 수송로의 밸브를 쥐게 되는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 온 중동 패권의 근간이 흔들리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역사적으로 막대한 해상 통행료가 정당화되는 곳은 인간의 자본과 노동이 투입된 수에즈 운하(Suez Canal)나 파나마 운하 같은 '인공 수로'에 한정된다. 이집트는 자신들의 영토를 파내어 만든 수에즈 운하에 대한 배타적 주권을 인정받아 막대한 통행료를 걷는다.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천연 해협'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동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가장 중요한 해상로인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이 이를 증명한다. 과거 연안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해적 소탕과 환경 오염 방지 비용을 이유로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주요 해운국들은 유엔해양법협약의 통과통항권을 근거로 이를 강력히 저지했다. 대신 협약 제43조(해협 유지에 관한 이용국과의 협력)에 따라 통행료를 강제 징수하는 대신, 주요 해운국들이 자발적 기금을 조성하여 항행 인프라 유지 비용을 우회적으로 분담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요구하려는 '통행료'는 수에즈 운하와 같은 인공 수로의 특권을 자연적 해협에 무단으로 적용하려는 시도이자, 말라카 해협에서 수십 년간 지켜져 온 자유 항행 원칙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위다. 호르무즈에서 통행료가 용인된다면 전 세계 모든 국제 해협이 연안국의 경제적 인질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지정학적 갈등의 이면에는 '자금'과 '핵'이라는, 양국이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두 개의 심장이 박혀 있다. 이란의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해외 계좌에 묶여 있는 120억 달러(약 16조 원) 규모의 동결 자산을 즉각 해제하라는 것이다. 3개월간의 전쟁과 장기화된 제재로 인해 국가 경제가 붕괴 직전에 몰린 이란 지도부에게, 이 막대한 현금은 체제 유지를 위한 유일한 생명줄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단 한 푼의 돈도 교환되지 않을 것"이라며 현금 지급을 원천적으로 거부했다. 더욱 기형적이고 해결하기 어려운 쟁점은 바로 이란의 핵 물질 처리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개월 전, 미국의 전략폭격기 B-2가 이란의 산악 지대를 강타했을 때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버린 농축 우라늄, 이른바 '핵 먼지(Nuclear Dust)'를 협상 테이블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무너진 산을 파헤쳐 이 핵 물질을 발굴하고 미군과 IAEA 주도하에 '완전한 파기(DESTROYED)'를 집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주권 침해적 요구다. 공격을 가한 국가의 군대가 피해국의 영토 깊숙이 들어와 핵심 군사 기밀 시설의 잔해를 직접 해체하겠다는 것은, 이란의 국가적 자존심과 안보의 마지노선을 짓밟는 행위다. 이란 측이 합의문 초안에는 핵 물질 파기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고 부인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핵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미국의 압박과 제재 해제를 최우선시하는 이란의 요구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양국의 극단적인 충돌은 애꿎은 주변국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중동의 스위스라 불리며 막후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온 오만이 사태의 중심에 섰다. 지정학적 특성상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은 오만의 영해를 거치게 되는데, 오만이 이란의 통행료 징수 논의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 회의에서 "오만은 다른 나라들처럼 올바르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만을 날려버려야 할 것(blow ’em up)"이라며 동맹국을 향해 폭격의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미국 재무부 역시 오만을 콕 집어 통행료 징수를 돕는 행위를 가혹하게 응징할 것임을 경고했다. 이는 '항행의 자유'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 군사적 징벌을 가하겠다는 패권국의 적나라한 민낯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60일간의 양해각서는 본질적인 평화 조약이 아니다. 파국으로 치닫는 폭주 기관차의 브레이크를 잠시 당겨놓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어떤 합의든 진정한 승자는 합의 다음 날부터 전쟁을 더 완벽하게 준비한 자"라는 이란의 서늘한 선언은 이 60일이 평화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다음 충돌을 위한 재무장의 시간임을 암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최종 결정을 미룬 채 상황실을 떠난 것도 이념과 현실의 거대한 간극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120억 달러의 구명줄, 땅속에 묻힌 치명적인 핵 먼지, 그리고 유엔해양법협약을 위시한 국제법의 질서를 찢어발기며 강행하려는 초법적인 해협 통행료 요구. 이 거대한 세 개의 뇌관 중 단 하나도 온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파괴적 양보를 강요하는 제국의 압박과, 사활을 건 신정 국가의 미사일 시위가 부딪히는 호르무즈의 바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은 채 붉은 노을을 맞이하고 있다. 진정한 종전(終戰)의 시계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