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글을 잘 쓰는 아이가 있다. 그런데 그 글이 정말 그 아이가 쓴 것인지, 요즘은 확인이 어렵다. AI(인공지능)가 써준글과 아이가 쓴 글은 겉으로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아니, AI가 써준 글이 더 매끄러울 때가 많다. 부모는흐뭇하다. 아이는 홀가분하다. 그 홀가분함이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라면?
지난 2023년 4월부터 5월 사이, 독일의 한 대학 컴퓨터실에서 실험이 하나 진행됐다. 91명의 학부생이 같은 과제를 받아 수행했다. 자외선 차단제 속 나노 입자가 건강에 해로운지, 가상의 친구에게 근거 있는 권고안을 써주는 것이었다. 반은 구글(Google)로 직접 정보를 찾았고, 반은 챗지피티(ChatGPT)에게 물었다. 탐색 시간은 20분. 그 뒤 모든 도구를 닫고 기억에만 의존해 권고안을 썼다. 이 결과는 2024년 7월에 논문으로 발표됐다.
결과는 반반이었다. 예상대로인 것과 예상을 뒤엎은 것이 하나씩 나왔다. 예상대로였던 쪽은 챗지피티 집단이었다. 정보를 찾는 과정이 훨씬 수월했고, 얼마나 머리를 써야 했는지를 측정하는 인지 부하 수치도구글 집단보다 전 항목에서 유의미하게 낮았다. 그런데 막상 완성된 권고안의 논리 수준을 채점하자 순서가 뒤집혔다. 구글로 찾은 집단의 평균이 1.87점, 챗지피티 집단은 1.20점이었다. 더 편했던 쪽이 덜 깊이생각한 것이다. 연구팀은 추가 분석에서 그 이유까지 확인했다.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얼마나 머리를 썼느냐가, 최종 논증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경로였다. 과정이 편할수록, 나온 생각도 가벼웠다.
비슷한 시기, 같은 문제의식을 글쓰기 과제에서 직접 들여다본 연구가 있다. 그리스 니코시아대학교(University of Nicosia)의 한 학자가 수행한 연구로 2025년 7월에 발표된 논문이다. 평균 나이 35세의성인 학습자 40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논증 에세이를 쓰게 했다. 한 집단은 챗지피티를 쓸 수 있었고, 다른 집단은 혼자 썼다. 과제가 끝난 뒤 모두에게 같은 질문지를 건넸다. 글을 쓰는 동안 얼마나 깊이 이해하려 했는지, 스스로 생각하려 얼마나 애썼는지, 집중은 유지됐는지, 다른 방식을 시도해봤는지를 5점 척도로 묻는 항목들이었다.
점수 차이가 눈에 띄게 컸다. 챗지피티를 쓴 집단은 평균 2.95점, 혼자 쓴 집단은 4.19점이었다. 같은 과제를 했는데, 챗지피티를 쓴 쪽은 스스로 깊이 생각했다는 느낌이 훨씬 낮았다. AI가 글의 방향을 잡아주는 순간, 쓰는 사람의 뇌는 그만큼 할 일을 잃는다. 40명이라는 작은 규모의 실험이고 참가자 스스로 답한방식이라 결과를 그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연구가 던지는 질문 만큼은 흘려듣기 어렵다. AI가 글쓰기를 도와주는 동안, 쓰는 사람의 뇌는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현상이 아이들에게 더 위험한 이유는 하나다. 아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AI의 도움으로 과제를마친 아이는 심지어 스스로 잘 해냈다고 느낀다. 결과물은 그럴듯하고, 빠르고, 힘들지 않다. 사고가 빠진 자리에 홀가분함이 들어선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행위가 아니다. 쓰는 과정에서 자기 안의 혼란이 정리되고, 논리의 빈틈이 드러나고, 막연하게 품고 있는 생각이 비로소 윤곽을 얻는다. 아이가 글을 어색하게 쓰는 것은무능의 신호가 아니다. 사고가 아직 형태를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AI가 그 형태를 대신 완성해주는 순간, 사고가 자라야 할 자리가 통째로 비어버린다.
글을 잘 쓰는 아이를 키우려 하지 마라.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 쓰다 막히고, 지웠다다시 쓰고, 조금 나아지다 또 막히는 그 반복이 사고를 깊게 판다. AI는 바로 그 막히는 순간을 없애주도록 설계돼 있다. 친절하게, 빠르게, 조용히. 그 조용함 속에서 아이가 잃는 것은 완성도 낮은 문장이 아니라, 생각이 자라는 시간이다. 매끈한 글 열 편보다, 버벅대며 써낸 한 문장이 아이를 더 멀리 데려간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