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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막는 경업금지, 생산성도 갉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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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막는 경업금지, 생산성도 갉아먹는다

OECD “민간 근로자 3분의 1 영향권”…저임금 직종까지 확산돼 노동 이동성 제약
기업들의 경업금지 조항 사용이 확산되면서 근로자 이동과 임금 협상력이 제약되고 선진국 경제의 생산성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기업들의 경업금지 조항 사용이 확산되면서 근로자 이동과 임금 협상력이 제약되고 선진국 경제의 생산성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진=챗GPT

기업들이 근로자의 경쟁사 이직을 막는 경업금지 조항을 더 많이 쓰면서 선진국 경제의 생산성까지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래는 영업비밀과 핵심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최근에는 저임금·초급 직종까지 확산되며 노동 이동성과 임금 협상력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낸 연구 보고서를 인용해 부유한 국가에서 경업금지 조항 사용이 늘고 있으며 민간 부문 근로자 약 3분의 1이 경쟁사 이직 제한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경업금지 조항은 퇴사한 근로자가 일정 기간 경쟁사로 옮기거나 동종 업종에서 창업하는 것을 제한하는 계약 조항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영업비밀, 고객 정보, 특정 기술과 노하우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근로자 입장에서는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길 자유를 제한받을 수 있다.

◇ 고용주 30% “최근 5년간 사용 늘렸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고용주의 약 30%는 최근 5년 동안 경업금지 조항 사용을 늘렸다고 답했다. 근로자 가운데 20%는 자신이 이 조항의 적용을 “분명히” 받고 있다고 답했고, 추가로 10%는 “아마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봤다.

OECD는 이 같은 조항이 경제적으로 해롭다고 분석했다. 근로자가 자신에게 더 생산적인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새 회사를 세우는 것을 막고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수 있는 협상력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OECD 연구진은 특정 산업에서 경업금지 조항 적용 비중이 10%포인트 높아질 때 노동생산성 수준이 1.9% 낮아지는 상관관계가 나타났다고 추산했다. 근로자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자리에 묶이고 기업들도 외부 인재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경업금지 조항이 단순한 개인 계약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역동성과 직결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인력이 더 생산적인 기업으로 이동하지 못하면 산업 전체의 효율성도 떨어질 수 있다.

◇ 패스트푸드·보육·요가강사까지 확산


문제는 경업금지 조항이 원래 취지와 거리가 먼 영역까지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OECD는 여러 나라에서 민감한 정보나 기업 고유 지식 보호라는 명분이 약하거나 없는 노동시장 영역에도 이 조항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초급 패스트푸드 직원에게, 이탈리아에서는 육체노동자에게, 호주에서는 보육 노동자나 요가 강사에게까지 경업금지 조항이 적용된 사례가 제시됐다.

이런 직종에서는 근로자가 핵심 영업비밀이나 전략 정보를 다룬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경업금지 조항이 포함되면 근로자는 비슷한 업종의 다른 일자리로 옮기거나 독립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데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안드레아 가르네로 OECD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법원에서 집행되기 어렵거나 엄격히 규제되는 지역에서도 경업금지 조항이 널리 쓰인다는 점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100년 넘게 경업금지 조항이 금지된 곳에서도 이 조항이 다른 지역만큼 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 법적 효력 없어도 위축 효과


기업이 경업금지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 데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반면 근로자는 소송 가능성 자체만으로도 위축될 수 있다.

가르네로는 고용주 입장에서는 조항을 넣는 데 비용이 없고 법적 조치에 대한 두려움은 실제 법원에서 인정될 가능성이 낮더라도 근로자에게 위축 효과를 준다고 지적했다.

OECD 조사 대상 15개국 근로자 가운데 약 20명 중 1명은 경업금지 조항 때문에 이직하거나 창업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조항이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근로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다.

근로자가 법적 권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계약서에 경업금지 조항이 들어 있으면 근로자는 그것이 실제로 집행 가능한지와 관계없이 위험을 피하려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결국 경업금지 조항은 법정에서의 효력보다 계약서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노동 이동을 줄일 수 있다.

◇ 각국 규제 움직임에도 사용 증가


여러 나라가 경업금지 조항을 제한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용은 오히려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연방 차원의 포괄적 금지 방안이 추진됐지만 규제당국은 이를 포기했다. 반면 호주는 내년부터 고소득 근로자를 제외한 일반 근로자에게 경업금지 조항 사용을 제한할 계획이다.

캐나다도 더 엄격한 규제를 예고했다. 영국 정부는 모든 경업금지 조항을 금지하는 방안부터 저소득 근로자에게만 제한하는 방안, 적용 기간을 줄이는 방안까지 여러 선택지를 놓고 개혁을 검토해왔다.

OECD는 정부가 경업금지 조항 사용 제한을 실제로 집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스페인처럼 조항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고용주에게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근로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안내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업금지 조항이 실제로 어디까지 유효한지 알지 못하면, 근로자는 불필요하게 이직과 창업을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밀유지·고객접촉 제한도 늘어


OECD 조사는 경업금지 조항만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고용 제한도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들은 비밀유지계약, 퇴사 후 고객이나 전 동료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비유인 조항, 퇴사 시 보너스나 교육비를 반환하도록 하는 조항을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비밀유지계약은 영업비밀 보호라는 정당한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넓게 적용되면 근로자가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다른 일자리로 옮기는 것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비유인 조항도 마찬가지다. 전 직장의 고객을 빼내는 행위를 막는다는 명분은 있지만, 적용 범위가 넓으면 근로자가 이전 경력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어려워진다.

교육비 반환 조항은 기업이 근로자에게 제공한 훈련비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퇴사를 사실상 막는 장치로 사용될 경우 노동 이동성을 낮출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제한 조항이 함께 쓰이면 근로자의 이동 자유는 더 크게 줄어든다. 기업 간 인재 이동이 줄면 기술 확산과 창업, 임금 상승도 둔화될 수 있다.

◇ 담합성 임금 억제 의혹도


OECD는 기업 간 인력 빼가기 금지 합의나 임금 담합도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널리 퍼져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이런 합의는 대체로 불법으로 간주된다.

조사에서 고용주의 절반은 자신이 속한 산업에서 이런 관행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근로자 이동을 제한하는 문제가 개별 계약을 넘어 기업 간 관행으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업들이 서로 직원을 빼가지 않기로 하거나 임금 수준을 맞추기로 하면, 근로자는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일자리로 옮길 기회를 잃는다. 이는 노동시장 경쟁을 약화시키고 임금 상승을 억누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생산성 측면에서도 부정적이다. 인재가 더 효율적인 기업으로 이동하지 못하면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혁신 기업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 기업 보호와 노동 이동의 균형


경업금지 조항이 모두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훈련한 인력이나 핵심 기술, 고객 정보, 연구개발 자료를 보호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OECD의 문제 제기는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졌다는 데 있다. 민감한 정보를 다루지 않는 저임금 근로자나 초급 직원에게까지 이직 제한을 거는 것은 기업 보호보다 노동시장 통제를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생산성 높은 경제는 인재와 기술, 아이디어가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경업금지 조항이 과도하게 쓰이면 기업은 단기적으로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있지만, 경제 전체로는 혁신과 임금 상승, 창업을 막는 비용이 커진다.

이번 OECD 연구는 경업금지 조항을 단순한 고용계약 관행이 아니라 생산성 정책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의 정당한 보호 장치를 인정하되, 저임금·비핵심 직종까지 확산된 이직 제한은 더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질 전망이라고 FT는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