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미지 확대보기놀라지 마시라. 이런 내가 군 시절 보병대대 중화기중대에서 작전 지도를 만들었다. 물론 창의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상급 부대에서 보내온 지도의 복사판을 그리는 일이었고, 더구나 나의 군대 시절은 전쟁이 나지 않은 태평성대였다. 고참들 중에는 원래 제대일보다 보름 가까이 일찍 나간 이도 있었는데, 이를 학수고대하던 나는 정작 하루를 더 채우고 제대했다. 어두운 길눈이 개선되지 않은 작전병에 대한 하늘의 소심한 보복이었을까?
전쟁 통에 작전 지도를 판독하지 못하고 길을 헤매는 군대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흔한 군대 농담처럼 "여기가 아닌가벼"라는 허무한 소리를 들으며 전선으로 나아가는 비극을 말이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는 총성 없는 냉전의 시대를 지나, 포연과 폭발음이 가득한 열전(熱戰)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정책이 길눈 어두운 작전병이 그린 낡은 지도를 따라가서야 되겠는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없다. 나는 어두운 길눈을 조금이라도 틔워보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부지런히 현장을 찾았다. 그러다가 살면서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가를 깨달았다. 오도된 지식을 절대적 진리라 확신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추진력 있게 자신의 신념을 구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식은 좋은 지도를 그려내는 재료일 수는 있어도 그 지도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이미 한물간 철학과 사회현상에 대한 해석, 역사적 인식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죽은 3대 독자' 품듯 끼고 살며 단 한 치의 변경도 허용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귀한 아들이 죽은 줄 알면서도 시신에 보형재를 넣고 분칠해 품에 안고 있어야 종가로서 권위를 유지한다고 믿는 격이다. 그들에게 지도는 이미 오래전에 낡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도를 고쳐 그리기보다 지도가 옳다고 우기는 데 남은 성실함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정작 두려운 것은 지도가 낡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낡은 지도를 새 지도인 양 분칠하는 그 손길이다.
글을 쓰고 현장을 발로 뛰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확신에 찬 사람일수록 "지도를 다시 고쳐 그립시다"라는 제안을 가장 불쾌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 지도로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근거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절에 무사태평했던 지도가, 격랑이 몰아치는 열전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나의 군대 시절이 그랬듯 지도가 틀려도 총알이 날아오지 않던 태평성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GPS를 생각한다. 개인의 주관적인 길눈이나 오래된 낡은 직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데이터와 과학적 좌표를 실시간으로 가리키는 정교한 시스템을 받아들이자는 뜻이다. 되지도 않을 주관적 길눈만 고집하며 헤매고, 곁에 있는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허망하게 갉아먹지 말자는 경각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