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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무책임한 에너지 정책…그 비용은 국민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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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무책임한 에너지 정책…그 비용은 국민의 몫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박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박사)이미지 확대보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박사)

오래전 KBS '유머 1번지'에 '괜찮아유'라는 코너가 있었다.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느긋함과 능청스러움으로 큰 웃음을 주었던 최양락의 대표작이다.

최양락의 집에서 잔치 그릇을 빌려 가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발을 헛디디며 그릇을 와장창 깨뜨리는 사고가 있었다. 애지중지하던 그릇이 산산조각 났지만 최양락은 화를 내지 못했다. 체면과 인정 때문에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유. 깨지니까 그릇이지유. 안 깨지면 공이지유."하고 말았다.

너무나 귀해서 소중히 모시던 그릇이 깨졌는데, 어찌 그의 마음이 괜찮았겠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앞에 두고 "깨지는 게 그릇의 본질"이라며 속을 달래는 기막힌 반어법이다. 요즘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코미디 프로그램의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걸 어쩔 수 없다.

동해안에는 대규모 발전설비를 건설해 놓고도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망이 제때 갖춰지지 않아 발전 제약이 발생한다. 호남과 제주에서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설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계통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대에 출력제어가 시행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전기를 보내지 못해 발전기를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다른 쪽에서는 전기가 넘쳐 발전을 멈춘다.

발전소만 지으면 전기가 저절로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전력은 생산과 송전, 배전, 저장과 수요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 발전과 송배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전력을 생산해도 제때 공급할 수 없다.

문제는 앞으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전국에서 추진되는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는 단순히 많은 전기가 아니라 24시간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고품질 전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송전망을 건설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현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송전선로 건설은 지역 주민의 반대와 환경영향평가, 부지 확보 등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한다.

그럼에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너무나 쉽게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말한다. 바로 현실판 괜찮아유다.

그러나 어떤 표현으로 그 상황을 설명한다 한들, 깨진 그릇의 파편을 정돈하고 대체할 그릇으로 복원하는 비용은 결국 기업과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송전 제약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발전사업자는 손실을 입고, 출력제어를 받는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사업성을 걱정한다. 전력망 보강과 계통 안정화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역시 결국 전기요금이나 세금의 형태로 사회가 부담한다. 한국전력의 부채는 2016년 104조 원에서 2025년 205조 원으로 9년 만에 두 배로 늘었고, 지난해 역대 최대 흑자를 냈음에도 이자 부담 탓에 빚은 오히려 늘어나는 구조다. 2027년 말 한전채 발행한도 특례마저 일몰되면 2028년부터 발행 여력이 90조 원대에서 36조 원대로 급감해 이른바 사채 절벽이 예고돼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도 우리 제조업에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전기요금 인상은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 실패의 책임이다. 새로운 정책을 설계한 사람은 임기가 끝나면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지만, 발전소와 송전망, 산업단지는 앞으로 적어도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 남는다. 잘못 설계된 전력 시스템은 다음 세대에까지 짐으로 남는다.

정부는 발명가도 실험실의 연구원도 아니다. 발명가는 실패하면 설계를 다시 고치고, 학자는 가설이 틀리면 논문을 새로 쓰면 된다. 하지만 국가 에너지정책에는 국민의 세금과 기업의 투자, 국가 산업의 생존이 걸려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이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다 못해 실제 전쟁으로 고조될 우려마저 제기되는 상황은 모두가 알지 않는가. 에너지 안보는 곧 국가 안보다.

정치는 구호와 선언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전력계통은 물리법칙으로 움직인다. 주파수와 전압은 정치적 명분을 알아듣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발전원이라도 전력망과 저장, 예비력과 수요관리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이 될 수 없다. 전력 계통의 물리적 한계를 무시한 정책은 결국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동안 국민과 기업은 정책이 바뀌고 비용이 늘어날 때마다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감내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웃으며 괜찮아유라고 말할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다. 안 괜찮아유. 깨진 그릇값, 이제는 정책 만든 양반들이 물어내유. 책임 있는 에너지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