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생산시설 피격·호르무즈 봉쇄에 세계 공급량 3분의 1 발 묶여
한국·대만·싱가포르, 미국산 헬륨 확보 나서…미 수출 70% 급증
미 반도체업체 공급 제한·대학 연구실 배급제…생산 차질 우려 확산
한국·대만·싱가포르, 미국산 헬륨 확보 나서…미 수출 70% 급증
미 반도체업체 공급 제한·대학 연구실 배급제…생산 차질 우려 확산
이미지 확대보기이란 전쟁으로 국제 헬륨 현물가격이 3배로 치솟고 세계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생산국들이 미국산 헬륨 확보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카타르의 대규모 헬륨 생산시설이 이란의 공격을 받은 데 이어 호르무즈해협의 해상 운송까지 막히면서 반도체와 첨단 전자제품, 의료장비, 방위산업 전반에 공급 부족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 CBS뉴스는 시사 프로그램 '60분'을 통해 이란 전쟁이 7개월째 이어지면서 세계 헬륨 공급망이 위기에 빠졌다고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CBS에 따르면 세계 헬륨 현물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3배로 상승했다.
프랑스 산업용 가스업체 에어리퀴드의 전직 임원이자 헬륨 산업 전문가인 리치 브룩은 “헬륨 현물가격이 전쟁 전보다 3배 올랐으며 앞으로 더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 대만, 싱가포르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카타르산 헬륨 공급 차질을 메우기 위해 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CBS뉴스는 전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수출 통계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헬륨 수출은 70% 증가했다.
그러나 미국이 늘어나는 해외 수요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CBS뉴스는 보도했다.
◇호르무즈 봉쇄에 세계 헬륨 공급 3분의 1 차질
헬륨 공급난은 지난 2월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본격화됐다.
페르시아만에 갇힌 헬륨 물량은 세계 공급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어 3월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의 라스라판 천연가스 생산시설이 피해를 입으면서 공급망 불안이 더욱 심해졌다.
라스라판은 천연가스와 그 부산물인 헬륨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시설이다.
카타르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상업용 헬륨을 생산하는 국가다.
카타르 측은 이란의 공격 이후 라스라판 시설이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 최소 3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헬륨 생산설비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헬륨 공급망의 또 다른 문제는 생산국이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헬륨 탐사업체 대표인 클리프 케인에 따르면 주요 생산국은 미국, 카타르, 러시아, 알제리, 폴란드 등이며 미국과 카타르가 공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케인은 이처럼 소수 국가에 집중된 생산시설 가운데 일부만 가동을 중단해도 세계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헬륨은 운송도 까다롭다.
액체 상태로 운송하려면 화씨 영하 452도에 해당하는 섭씨 약 영하 269도의 극저온을 유지해야 한다.
한번 대기 중으로 방출된 헬륨은 사실상 회수하기 어려워 공급량을 단기간에 늘리기도 쉽지 않다.
◇한국·대만·싱가포르 미국산 헬륨 확보 경쟁
헬륨 공급 부족은 아시아의 주요 반도체 생산국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CBS뉴스는 지적했다.
브룩은 CBS와 인터뷰에서 “한국, 대만, 싱가포르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카타르산 헬륨을 대신할 공급처로 미국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반도체 제조에 사용할 수 있는 헬륨의 주요 공급처가 전통적으로 카타르와 미국의 엑손모빌 생산시설이었다고 설명했다.
카타르의 공급이 중단되자 이들 국가의 기업들이 미국산 물량 확보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 이후 미국의 헬륨 수출은 70% 증가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헬륨의 대부분도 와이오밍주의 단일 시설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대체 공급처로 부상했지만 세계적인 공급 부족을 무기한 메울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헬륨 공급업체는 지하 암염층에 조성된 저장시설에서 비축 물량을 꺼내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비축 물량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브룩은 향후 3개월 동안 호르무즈해협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다면 헬륨 시장의 향방도 예측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 헬륨 20% 반도체산업에서 소비…장비 절반가량 사용
헬륨은 일반적으로 풍선에 사용되는 가스로 알려져 있지만 첨단산업에서는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소재다.
미국 압축가스협회에 따르면 세계 헬륨 소비량의 약 20%를 반도체산업이 차지한다.
반도체 제조업체 폴라세미컨덕터스의 수리야 아이어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반도체 제조시설 내부 장비의 약 40~50%가 어떤 형태로든 헬륨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생산에는 수백 단계에 걸쳐 헬륨이 사용된다.
헬륨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면 생산시설 전체를 멈춰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이어 COO의 설명이다.
폴라세미컨덕터스는 미국 미니애폴리스 인근에서 자동차 엔진 제어시스템과 데이터센터 서버, 미군 장비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월간 생산능력을 약 1억4000만개로 두 배 확대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 확대를 앞둔 시점에 헬륨 공급난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폴라세미컨덕터스는 공급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세 곳의 업체에서 헬륨을 조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급업체 가운데 한 곳이 헬륨 공급량을 제한하는 배급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아이어 COO는 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전기화 확대로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헬륨 수요도 장기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대학 연구실도 헬륨 반토막 배급…의료 연구 타격
헬륨 공급난은 의료·과학 연구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시카고대의 조 삭레벤 연구원은 유방암 치료제와 면역치료제, 알츠하이머병 치료법 등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핵자기공명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장비는 초전도 자석을 극저온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액체 헬륨이 필요하다.
삭레벤 연구원은 약 두 달마다 액체 헬륨 100L를 장비에 보충하고 있다.
그는 헬륨이 부족해 자석을 충분히 냉각하지 못하면 장비가 손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헬륨 공급업체는 최근 지난해 사용량의 50%만 공급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연구실은 제한된 헬륨을 어떤 장비에 우선 공급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예비 공급업체도 확보했지만 해당 업체 역시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삭레벤 연구원은 지난달 예비 공급업체로부터 헬륨 재고가 곧 소진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헬륨 공급망을 정상화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사일·방산 생산에도 헬륨 필수…전쟁 장기화가 변수
헬륨 부족은 방위산업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CBS뉴스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이란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부 방산업체에 특정 무기의 생산능력을 4배로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사일과 극초음속 무기 등에 사용되는 전자장비 및 광섬유 제조에도 헬륨이 필요하다.
헬륨 탐사업체 대표인 케인은 헬륨 없이는 현대전 수행에 필요한 장비와 무기를 생산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전쟁으로 헬륨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무기 생산 확대를 요구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헬륨 부족이 반도체와 의료장비를 넘어 방산 생산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CBS는 헬륨 공급망이 소수 생산국과 제한된 운송 경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특히 호르무즈해협의 운송 차질이 계속되고 카타르 생산시설의 복구 일정도 불확실한 만큼 세계 헬륨 공급난이 얼마나 장기화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생산국들이 미국산 헬륨 확보에 나선 가운데 공급 부족이 장기화하면 반도체 생산 확대 계획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