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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367)] 내 삶에 대한 주체적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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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367)] 내 삶에 대한 주체적인 편집

[글로벌이코노믹 안명숙 인천효성남초등학교 교사]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아이러브 人-지식나눔콘서트’를 통해 강연의 즐거움을 새삼 알게 되었다. 늦은 밤 명사들의 강연은 바쁜 일상 속에 지친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때로는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강연이 끝난 후의 아쉬움은 그 분들의 책을 읽으며 달래기도 하고, 강연과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선생님들이나 학부모 연수에서 소개하기도 하였다. 강연에서 만났던 명사들을 책 속에서 다시 만날 때 느껴지는 친근감은 아마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는 행복일 것이다.

얼마 전 신년특집으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의 특강이 3회에 걸쳐 방송되었다. ‘오늘 미래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3일간의 강연은 ‘에디톨로지’라는 김정운 박사의 신간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김정운 박사의 위트 있는 강연 내용이 머릿속에 재생되는 듯하였다. 김정운 박사 특유의 편안한 문체나 실컷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 놓은 후 ‘물론 이것도 그냥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라는 식으로 허무하게 글을 끝맺을 때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책의 제목인 ‘에디톨로지’만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김정운 박사가 만들어낸 신조어니까 당연하다. 김정운 박사가 주장하는 에디톨로지(editology), 즉 ‘편집학’은 ‘창조는 곧 편집’이라는 의미로 그저 섞거나 그럴듯한 짜깁기가 아니라 인식의 패러다임 구성 과정에 관한 설명이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1부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에서는 마우스의 발명과 하이퍼텍스트를 핵심주제로 지식과 문화가 어떻게 편집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네트워크적 지식의 탄생인 폭소노미의 이야기나 일본 망가에서 시작된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 편집 등 실생활과 연관된 예들이 이해를 돕는다.

2부 ‘관점과 공간의 에디톨로지’에서는 원근법을 중심으로 공간편집과 인간 의식의 상관관계를 다뤘다. 다빈치의 ‘수태고지’를 본 적이 있는가? 이 그림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원근법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빈치의 실수가 아니라 오른쪽 아래에서 올려다봐야 하는 그림의 위치를 고려해 그렸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누가 어디에서 보는가’를 고려해 그림을 그린 것으로 객관성과 합리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원근법이 동시에 주체의 발견(주관성)을 포함한다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다.

3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는 심리학의 본질에 관한 설명이다. 심리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편집되었는가를 보여주며, 아울러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성립과 몰락이 심리학이라는 근대 학문 형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메타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특히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들은 ‘에디톨로지’에 이어 ‘미움 받을 용기’를 읽으며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만날 때도 계속 떠올리게 된다.

현재 김정운 박사는 일본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교수직을 얻었으나 어느 날 문득 행복하지 않은 나를 발견하고 어린 시절 꿈이었던 만화 그리는 일을 새롭게 배우기 위해 일본의 한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격하게 외롭다고 표현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일상이 격하게 행복해 보이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편집했기 때문이 아닐까.

소박하고 평범한 우리의 일상 속에서 김정운 박사처럼 격하게 행복한 편집은 어려울지라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편집해 나가고자 하는 인식의 변화 욕구를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되리라 생각한다. 모든 변화는 작은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로벌이코노믹 안명숙 인천효성남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