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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패권 中에 빼앗길 수 없다…美 금융‧기술까지 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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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패권 中에 빼앗길 수 없다…美 금융‧기술까지 봉쇄

완성품 생산에 필수적인 자본재 통제권 쥐고 있던 미국
관세 등 제제 불구 부분품‧원재료 수입 4분의 1 중국산
첨단제품에서 일반상품까지 규제품목 점차 확대 전망
기술이전‧M&A 금지, 금융자본시장 진출 규제 등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동절인 자넌 5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헨리 마이어 축제 공원에서 미국 제조업을 부활해 노동자들이 대접받도록 할 것이라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노동절인 자넌 5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헨리 마이어 축제 공원에서 미국 제조업을 부활해 노동자들이 대접받도록 할 것이라고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생산을 모두 관철하기 위한 강력한 고립주의, 즉 ‘플랫폼 경제 체제’를 추진하는 배경은 제조업 패권을 중국에 내줄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중국 배제를 강력히 추진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완제품을 만드는 데 투입되는 ‘자본재’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자본재는 기계, 장비, 도구, 부품 및 기타 생산에 투입되는 다양한 부분품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품으로 분류된 수입품 중 엔진 및 부품과 같은 많은 부분은 자본재다. 특히, 수입 중 절반 가량이 중간부품이거나 원자재로 채워지므로 자본재 교역을 통제할 수 있다면 완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 패권을 잡을 수 있다.

전 세계 무역 통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WITS(World Intergated Trade Solution)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수입액 가운데 자본재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내외다. 1991년만 해도 미국 자본재 수입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했지만 2000년 6.1%로 증가한데 이어 2010년에는 27.7%까지 확대됐다. 2008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무역 갈등을 본격화했지만 2019년에도 비중은 24.4%에 달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칩 4‧CHIP 4)을 시작으로 전기자동차와 배터리(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바이오 의약품의 자국 생산을 강제화하는 법‧제도 시행을 통해 한국과 일본, 대만, 유럽 기업들을 미국의 가치망 아래 편입하도록 하고, 중국과 손을 떼지 못하는 기업들엔 강력한 보복 조치를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이유다.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M&A)도 사실상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기업이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적성 국가에 투자할 때에도 첨단기술 유출 여부를 엄격히 통제하겠다고도 했다. 여기에 ‘킹달러’ 기조를 유지하면서 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도 키워 미국 중심의 경제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관세 등을 통한 수출 통제를 넘어 기술과 금융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중국과 단절을 관철하겠다는 것으로, 첨단산업에서 시작한 중국 견제는 다른 품목으로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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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품 무역정책에 있어 자본재는 대단히 중요한 품목이다. 더글러스 어윈(Douglas A. Irwin)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 교수의 저서 ‘공격받는 자유무역(Free Trade Under Fire)’에 따르면 1980년 이후부터 미국 제조업 무역의 대부분이 자본재 무역으로 채워줬으며, 특히 수입이 그랬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자본재 수입 증가에 대해 미국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본‧지사를 설립한 뒤 현지 조립을 통해 미국으로 수입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들이 우월한 지식재산권(IP)과 특허를 기반으로 외국 기업을 하청기업화 하는 등 강력히 통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은 미국의 제조업 주도권을 흔드는 강한 위기 요인이 됐다. 어윈 교수에 따르면, 2005년 중국에서 조립해 미국으로 수입된 제품 가격이 150달러인데 미국에서 300달러에 팔리면, 중국에서 생산한 중간재‧원재료 비용 비중은 4분의 1인 75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 수입한 것과 미국 내 소매 비용, 유통비용, 미국 기업이 정한 이윤 등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제조역량과 기술개발 능력을 키워 자본재를 중국 기업들이 직접 생산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2010년대부터 150달러에 수입해 300달러에 미국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 중국이 가져가는 몫이 200달러 이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자본재 수출을 제재하면 미국 제조업체들은 완제품을 제조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됐다.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이 맞대응하는 이유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 연구위원은 반도체를 예로 들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제조공정별로 살펴보면 웨이퍼 가공공정 부문과 EUV(극자외선) 장비에 취약하다는 것이 칩4(CHIP 4) 협의체 구성과 반도체 지원법을 시행한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제조 부문을 키우고 있는 중국이 성장하면 제품 수급의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라는 것이다. 배터리와 바이오 등 다른 산업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이들 지원책이 이미 취약해진 미국 제조업의 자체적인 성장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만, 유럽연합(EU) 등 우방국 기업들을 유치해 자국 산업의 약점을 보완하고, 이들을 통해 중국을 보다 확실하게 견제하려는 모양새다.

중국으로부터 자본재 수입 비중이 큰 한국 기업들에는 위협 요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등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들은 미국 현지에 사업장 투자를 해도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본재를 들여오는 데 있어 중국을 대신할 공급처를 구하기도 어렵고, 지역을 찾아냈다고 해도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첨단산업에 치중되어 있으나 과거 미국 정부가 취한 조치를 놓고 본다면 설탕과 세탁소용 철제 옷걸이까지 중국산 자본재가 적용되어 미국에서 판매되는 품목이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최근에는 첨단 전투기인 F-35에서 중국산 희토류가 발견되자 미 공군이 납품을 중단했을 만큼 적극적"이라며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이 확대될수록 우리 기업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