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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R&D 거점이 일본 일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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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반도체 R&D 거점이 일본 일수밖에 없는 이유

일본 공급업체의 고품질 기술 안정적 조달
미·중 대립과 한·일관계 개선 분위기 한 몫
일본 기업들과 우호적인 오너家 경영 철학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3000억 원을 투자해 일본 요코하마에 반도체 개발 거점을 세울 것이라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14일(현지시간)보도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개발 거점으로 일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일본이 가진 요소기술의 강점을 들 수 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연구시설에서는 제조 장비 및 소재업체 기술 담당자들이 협력사와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수백 개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 실리콘 웨이퍼 위에 미세한 회로를 형성하는 반도체 제조 공정 상 삼성전자는 각 공정의 제조 장비 및 정밀 화학 원료 업체들과 함께 세밀한 개선책을 쌓아가고 있다. 최첨단 반도체 개발 및 양산 기술 확립을 위해 외부 기업과의 긴밀한 연구 활동이 필수적인 까닭이다.

일본은 2019년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 관리를 강화했다. 이에 당시 문재인 정부는 대응 태세를 강화해 일본 의존도가 높은 소재-장비 분야의 국산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일부 범용 소재의 대체는 진행됐지만, 첨단 반도체에 필수적인 소재와 장비의 개발 및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다. 무역통계를 보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일본산 소재와 장비를 계속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주요 공급업체 리스트에 기재된 103개 업체 중 일본 기업은 18개사로 한국업체(48개사)들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도쿄일렉트론, 캐논, 무라타제작소 등 대기업 뿐만 아니라 정밀화학의 아데카(ADEKA), 반도체 기술의 뉴플레어테크놀로지, 전자기판의 메이코 등도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고품질에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일본 공급업체는 필수적"이라며 일본 기업과의 협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중 대립의 국제 정세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가 미·중 대립의 초점으로 떠오르면서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도 한일 공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공장 투자는 환영했지만 중국 내 추가 투자를 제한했다. 또한 미국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경쟁사와의 기술 협력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미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렇다고 기술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나 최대 경쟁사인 TSMC를 보유한 대만과의 협력은 리스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일정한 입지를 가진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득이 될 것으로 삼성전자는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들어 한일 관계 개선 분위기 속에 삼성전자가 최대 고객인 일본 협력사들에게는 이번 분위기가 반도체 분야에서도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가 크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9조 엔(약 90조 원)으로 키옥시아홀딩스나 소니의 6~7배에 달하는 사업 규모다.

마지막으로 삼성 선대 회장들의 철학도 삼성전자가 일본을 중요시한 이유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1970년대 전신 삼양전기와 NEC가 반도체, TV, 브라운관 등의 기술협력을 담당하며 전자산업 진출을 추진한 경력이 있다. 이후에도 도시바, 소니 등과 제휴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초대 회장은 1년 중 한 달 남짓 도쿄에 머물며 일본 재계 인사들과 토론하며 사업전략을 짜기도 했다. 2대 이건희 회장과 현 이재용 회장도 일본 유학 경험을 갖고 있다. 삼성 경영진들 역시 일본 업계와의 우호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실리를 우선시하는 산업계 역시 한일 협력의 장점을 설파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삼성 등 대기업들 역시 냉정하게 일본과의 시너지를 모색하고 있는 까닭이다.


정대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mjeo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