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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관세로 ‘무역 사기’ 급증…美 기업들 “규칙 어긴 쪽이 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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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관세로 ‘무역 사기’ 급증…美 기업들 “규칙 어긴 쪽이 이겨”

지난 2021년 11월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항 부두에서 컨테이너가 가득 실린 화물선이 하역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1년 11월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항 부두에서 컨테이너가 가득 실린 화물선이 하역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수개월간 관세를 대폭 인상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 사기가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기업들은 불법적인 관세 회피 행위가 확산되는데도 정부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규칙을 어긴 쪽이 이긴다”고 대응책 마련을 호소하고 나섰다.

NYT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본사를 둔 배관 제조업체 샬럿파이프앤드파운드리의 브래드 뮬러 마케팅·대정부업무 담당 부사장은 “중국 기업들을 추적해 문을 닫게 해도 그 옆에 금세 껍데기 회사가 다시 생긴다”며 “완전히 두더지잡기 게임이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 중국 제품에 최소 145%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했으며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는 각각 25%의 관세를 적용했다. 그는 또 관세율을 예고 없이 수시로 조정하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미국 기업들에 혼란을 주고 있다.
이같은 고관세 조치로 인해 중국 등 해외 운송업체들은 미국 기업들에 “관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이메일·틱톡 영상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 중국 업체는 “미국 관세를 10%로 고정시켜 줄 수 있다”며 “걱정 없이 물품을 배송하라”는 광고 문구를 보냈다.

이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상품 가액 축소 신고 상품 분류 조작 △제3국 경유 배송이다. 예를 들어 중국산 플라스틱 여행가방의 실제 가격이 10달러(약 1만4000원)지만 5달러(약 7000원)로 신고하면 75% 관세 기준으로 3.75달러(약 5000원)만 납부하면 된다. 또 폴리에스터 셔츠를 면 셔츠로 속이거나 중국산 장난감을 베트남으로 경유해 '베트남산'으로 통관하는 방식도 흔하게 쓰인다.

문제는 이런 불법행위가 사실상 단속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불법적인 관세 회피 방법을 찾을 시간에 각국 정부가 미국과 정당한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낫다”고 했지만,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관세 전문 변호사인 존 푸트는 “최근 수개월간 기업들로부터 이런 문의를 11건이나 받았고 그때마다 '그건 명백한 세관 사기'라고 답했다”며 “관세 사기가 본격적인 고관세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40년째 의류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레슬리 조던은 “중국 측에서 세관 서류를 조작하자는 제안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며 “정직하게 사업하는 우리는 매번 수만달러의 관세를 내야 하고, 불공정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기회주의적 사기꾼들이 넘쳐난다”며 “이제는 다들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다”고 했다.

또 다른 사기 수법으로는 중국 업체가 ‘인도조건 관세지급(DDP)’ 방식으로 미국 업체 대신 수입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낸 뒤 물품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미국 업체는 표면상 관세 회피와 관련이 없지만 당국 조사 시 ‘고의적 무지’를 면하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의 단속 역량 부족도 지적된다. 미 법무부는 이달 무역·세관 사기를 우선 수사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관련 인력은 이민 관련 부서로 전출된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샬럿파이프앤드파운드리의 뮬러 부사장은 “첫 번째 트럼프 행정부 때 우리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이끌어냈지만 중국 업체들이 곧장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등으로 우회 수출을 시작했다”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 문제를 수십 년간 방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략은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은 이상적이지 않다”며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쏘고 나중에 수습하는 구조가 아닌, 의회 차원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의 트리시 드리스콜 대변인은 “최근 대통령 지시에 따라 최상위 수위의 처벌 조치를 집행하고 있다”며 “5월 5일부터 9일까지 2000건 넘는 관세 회피 의심 물품을 조사해 6억3000만 달러(약 8700억원)의 관세를 징수했다”고 밝혔다.

무역 사기에 따른 관세 손실이 연간 수십억달러에 이르고 정직한 미국 기업들이 불공정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만큼 업계는 의회에 단속 인력 확충과 형사 처벌 강화를 위한 입법 조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