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를 일부 완화하며 올가을께 방중 가능성을 타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규제를 일부 철회하는 등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해온 분야에서 양보한 조짐도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중국에 고사양 AI 반도체 'H20'를 판매하도록 허용했다. 이는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금지했던 조치에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기술·군사력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H20을 포함한 고급 AI 반도체 수출을 전면 차단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은 희토류와 자석 수출을 제한하며 맞불을 놨고 이로 인해 포드와 스즈키 등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공장이 멈춰서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은 중국의 반격이 실제로 미국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후 무역협상에서 중국과의 대치보다 협력에 방점을 두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 트럼프 방중 가능성…9월 전승절 초청설도
20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모색하고 있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최근 기업인들 사이에서 "에어포스원에 탈 수 있는 인사를 선발하고 있다"며 중국 방문단 구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직 외교관 크레이그 앨런은 “양국이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며 “서로가 원하는 조치를 내놓거나 원하지 않는 조치는 보류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최근 몇 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중요하게 여겨온 펜타닐 원료 화학물질 수출을 차단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협력 분위기를 살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일부에서는 9월 3일 중국 전승절을 계기로 방중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 중국 매파는 후퇴…“기술 통제 완화는 중국의 성과”
이같은 행보에 따라 미국 내 대중 강경파들의 입지는 좁아지는 분위기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 등 일부 강경 인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강경파 일부는 최근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기술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기술을 막으면 오히려 중국의 자립을 가속화할 뿐”이라며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가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황 CEO와 백악관에서 만나 H20 수출 금지 조치의 철회를 최종 승인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 존 뮬러나 미 하원 중국특별위원회 위원장은 H20이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AI 챗봇 개발을 도왔다는 점을 들어 “중국의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결과”라고 경고했다. 또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수출통제국을 이끈 크리스토퍼 파딜라는 “수십 년간 미국의 기술 통제에 저항해온 중국 입장에선 이번 협상이 큰 성과”라며 “앞으로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여전히 이어지는 무역 긴장…진짜 합의는 ‘불투명’
트럼프 행정부가 H20 판매 허용과 같은 유화 제스처를 내놓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긴장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최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항공기 부품, 에탄 수출을 제한했고, 중국은 이에 맞서 배터리 기술 수출을 차단하는 등 맞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희토류 관련 라이선스가 중국 정부로부터 6개월 단위로만 부여되고 있으며, 미국 기업들이 기술 정보 제공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내 불만이 여전하다.
지미 구드리치 랜드연구소 기술자문위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 중국의 결정에 따라 미국의 기술·무역정책이 휘둘리는 상황에 빠졌다”며 “어떻게 빠져나올지가 최대 과제”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직접 협상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정상회담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기술 통제와 희토류 수출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 역시 뚜렷하지 않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