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와 LG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에서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대규모 단속을 벌여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구금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재계는 미국 내 투자를 압박받는 상황에서 비자 규정을 엄격히 지킬 수 없는 ‘불가능한 조건’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첨단 제조시설을 미국에 짓기 위해 파견 인력을 보내면서 업무용 비자(B-1)나 전자여행허가제(ESTA) 등을 활용해온 사실을 인정했다.
이 비자들은 단기 출장에는 적합하지만 미국 내에서의 근로 대가 지급은 허용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정부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눈을 감아왔다”고 말했다.
◇ “미국, 투자 요구하면서 노동자는 범죄자 취급”
ICE가 공개한 영상에서 노란 조끼를 입은 한국인 근로자들이 수갑과 족쇄를 찬 채 끌려나가는 장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FT와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에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필요한 단기 근로 비자는 막아 기업을 범죄자로 취급한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지만 싱가포르·캐나다·호주 등 다른 FTA 체결국과 달리 미국 내 별도의 단기 근로 비자 제도가 없다. 한국 정부는 20년 넘게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미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거듭 거부당했다.
◇ IRA 투자 확대와 비자 갈등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한국 기업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과 각 주정부의 인센티브에 힘입어 반도체·배터리·전기차 공장에 수십억달러 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공장 건설 과정에서 필요한 단기 숙련 인력은 확보하지 못해 ‘꼼수 비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컨설팅업체 인트라링크의 조너선 클리브 한국 담당 대표는 “미 당국은 형식상 ‘미국인 고용’을 요구하면서도 실제로는 프로젝트 기한을 맞추려면 한국 인력을 단기로 투입하는 것을 묵인해왔다”며 “노동력이 부족한 미국 남부 지역에선 숙련공을 확보하기가 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 “훈련으론 한계…기술 이전 꺼려”
일각에서는 한국 기술자가 장비 설치와 품질 관리, 기술 이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 원장은 “미국인 근로자를 훈련시킨다고 해도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은 쉽게 이전할 수 없고 한국 기업들은 핵심 기술 유출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외국 기업들이 합법적으로 우수 인재를 데려와 세계적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미국인들이 기술을 습득해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