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칩 패권 경쟁 속 '탈중국' 대안 부상한 인도…세계 기업 투자 행렬
벵갈루루에 R&D 허브, 5년간 500명 채용…인도 반도체 생태계 본격 합류
벵갈루루에 R&D 허브, 5년간 500명 채용…인도 반도체 생태계 본격 합류

이번 투자는 세계 AI 반도체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려는 손 회장의 과감한 투자 기조를 반영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세계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자 거대 시장으로 떠오른 인도를 AI 반도체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전략 포석이다. 이 투자는 엔비디아가 장악한 AI 칩 시장에 대한 소프트뱅크의 본격적인 도전 신호탄이자, 인도를 둘러싼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경쟁을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9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에 따르면, 그래프코어는 새로운 연구개발 허브 설립을 포함한 총 10억 파운드(13억 달러) 규모의 인도 투자 계획을 금주 중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발표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인도 순방에 맞춰 진행한다. 이 결정은 인도의 AI 산업이 농업, 교육, 제조업 등 여러 분야로 빠르게 확산하는 현지 상황을 깊이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브리스톨에 본사를 둔 그래프코어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에 첨단 연구 시설을 열고, 앞으로 5년 동안 AI와 반도체 전문 인력을 최대 500명까지 채용한다는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놨다. 이번 대규모 투자 계획과 관련해 그래프코어와 모회사인 소프트뱅크 측은 공식 논평을 거부하며 말을 아꼈다.
그래프코어는 한때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불리며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망한 신생 기업이었다. AI 서비스 개발에 특화한 지능처리장치(IPU)를 설계해 독자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2020년에는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28억 달러(약 3조 9800억 원)로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높은 기대와 달리 상업 성공을 거두는 데는 어려움을 겪으며 고전했다. 위기에 직면한 그래프코어에 손을 내민 것은 AI 시대를 대비해 과감한 투자를 찾던 소프트뱅크였다. 소프트뱅크는 2024년, AI 기반 시설 시장의 폭발 성장을 활용하려는 손정의 회장의 야심 찬 계획에 따라 비공개 금액으로 그래프코어를 전격 인수했다.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뒤 그래프코어는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핵심 인재 채용을 늘리고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왔으며, 이번 인도 투자는 그 연장선에 있는 핵심 행보다.
'기회의 땅' 인도, AI 패권 격전지로 부상
소프트뱅크가 인도를 차세대 AI 반도체 전략 거점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인도의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한 거대한 내수 시장은 물론, 농업, 교육, 제조업 등 사회 전반에 걸쳐 AI 기술 도입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기술 갈등이 심해지면서,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플랫폼스 같은 세계 대규모 기술 기업들은 중국을 대체할 안정된 성장 시장으로 인도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매출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그 성장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추세다.
모디 정부, 파격 지원책…타타·마이크론 등 투자 잇따라
인도 정부 역시 자국을 세계 반도체 중심지로 키우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메이드 인 인디아' 정책의 핵심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을 내걸고,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해 7600억 루피(약 12조 원, 86억 달러)의 파격 지원 기금을 조성했다. 아직 해외 기업의 대규모 반도체 생산 시설 투자가 활발하지는 않지만, 최근 정부가 전폭 지원하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인도 타타 그룹은 대만 파워칩 반도체 제조 공사(PSMC)와 손잡고 110억 달러(약 15조 6000억 원)를 투자해 웨이퍼 팹(반도체 생산공장)을 짓고 있으며,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역시 약 30억 달러(약 4조 원)를 들여 후공정(조립 및 테스트) 시설을 세우고 있다. 모디 총리는 연말까지 인도에서 생산할 첫 반도체 칩이 시장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AI 경쟁의 심장부로 떠오른 인도 시장을 먼저 차지하려는 움직임은 반도체 업계를 넘어 AI 서비스 분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챗GPT 개발사 오픈AI 역시 최소 1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인도에 세우기 위해 현지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의 이번 투자는 자사의 세계 AI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인도 안의 기술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하려는 다목적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인도가 AI 칩 설계부터 생산, 데이터 센터까지 아우르는 AI 기반 시설의 격전지로 떠오르는 가운데, 그래프코어의 이번 투자는 인도 신흥 AI 반도체 산업 성장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