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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난’ 덮친 글로벌 제조기지, 휴머노이드 ‘디짓’이 구원투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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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난’ 덮친 글로벌 제조기지, 휴머노이드 ‘디짓’이 구원투수 될까

아마존·토요타 현장 투입 확대… 단순 보조 넘어 생산 공정 ‘핵심 축’ 급부상
2030년 노동 손실액 1경 1100조 원 육박, 고령화 파고 속 ‘로봇 경제’ 골든타임
현대차·삼성 등 국내 기업도 兆 단위 베팅… ‘K-로봇’ 생태계 구축 전략적 대응 시급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 사진=연합뉴스


전 세계 주요 제조 및 물류 거점이 전례 없는 ‘인력 가뭄’에 직면한 가운데, 인간의 신체 구조를 닮은 이족보행 로봇이 그 빈자리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9일(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 보도에 따르면,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Digit)’이 아마존과 토요타 등 글로벌 거대 기업의 실전 공정에 전면 배치되며 산업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고령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노동력 증발’이라는 전 지구적 재앙에 맞서는 산업계의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사람이 기피 하는 곳에 로봇 있다”… 현장 파고든 ‘디짓’의 파괴력


현재 아마존은 차세대 물류 시스템인 ‘세쿼이아(Sequoia)’에 디짓을 통합하여 운영하고 있다. 디짓은 물류 창고 내에서 빈 토트(Tote, 바구니)를 수거하거나 선반에 적재하는 등 인간 작업자가 가장 피로감을 느끼는 반복 공정을 전담한다.

아마존 측 데이터에 따르면 로봇 투입 이후 물류 처리 속도는 약 25% 향상됐으며, 근골격계 질환 등 작업자 안전사고 위험은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업계의 행보도 매섭다. 토요타 연구소(TRI)는 애질리티 로보틱스와 손잡고 자동차 부품 운반 및 공정 최적화에 디짓을 배치했다.

BMW 역시 미국 스파탄버그 공장에 ‘피규어 01’을 투입해 차체 조립 공정의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멜로니 와이즈(Melonee Wise) 애질리티 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디짓은 인간을 위해 설계된 기존 공장 설비를 전혀 수정하지 않고도 즉시 투입 가능하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라며 휴머노이드 로봇이 지닌 경제적 범용성을 정조준했다.

‘K-로봇’의 역습… 현대차·삼성·LG, 兆 단위 베팅으로 ‘로봇 주권’ 확보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국내 대기업들도 ‘로봇 경제’ 패권을 잡기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양산형 모델을 공개하며, 오는 2029년까지 연간 15만 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생산 체제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특히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를 현대모비스가 공급하고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조립하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제작 원가를 2만 달러(약 2900만 원) 수준으로 낮추어 대중화 시대를 열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행보도 구체적이다.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인수를 통해 이족보행 기술을 확보하고, 반도체 웨이퍼 이송 공정에 로봇을 투입하여 ‘24시간 무인 가동’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스타트업 ‘피규어 AI’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로봇 부품 브랜드 ‘악시움(Axium)’을 론칭하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생태계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단순히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로봇의 ‘두뇌’인 피지컬 AI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분위기다.

1경1100조 원 규모 ‘노동 공백’… 로봇은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역설적으로 인류의 고령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최신 보고서를 정밀 분석한 결과,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발생하는 노동력 부족에 따른 잠재적 경제 손실액은 무려 7조5000억 달러(약 1경11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하방 압력은 더 거세다. 미국 제조업 협회(NAM)는 2030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약 210만 명의 제조업 일자리가 공석으로 남을 것이라 경고했다.

독일은 해마다 40만 명, 일본은 2030년까지 약 644만 명의 노동 인구가 증발할 위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32년까지 제조업 숙련 인력이 최소 15만 명 이상 부족해질 것으로 분석되면서, 로봇 도입을 통한 생산성 방어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기술적 한계와 비용 문제는 여전한 숙제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당 도입 및 유지 비용은 일반 노동자의 연간 임금을 웃도는 수준이며, 배터리 지속 시간과 돌발 상황 대응 능력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지점으로 꼽힌다.

국내 로봇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이 휴머노이드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협업할 수 있는 ‘유연한 지능’을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이 2035년까지 약 380억 달러(약 56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 가능 인구가 급감하는 ‘인구 절벽’의 시대, 로봇은 이제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경쟁자가 아니라 무너져가는 제조 현장을 지탱할 최후의 파트너로서 그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