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공세로 美 광산 줄줄이 폐쇄→기술 독점→2025년 수출 통제 강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9일(현지시각) 중국 정부가 희토류 시장 장악을 위해 국내 기업 재정 지원, 해외 자산 매수, 저가 공세를 통한 경쟁자 제거 등 공격 전략을 펼쳐왔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희토류 수출 제한을 다시 강화해 백악관을 긴장케 했다. 지난 9일 중국 상무부는 중국산 희토류를 써서 해외에서 자석을 만드는 기업들이 수출 전 중국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하는 새 규제를 발표했다. 희토류는 자동차, 풍력 터빈, 제트 전투기 등에 꼭 필요한 자석 제조에 쓰이는 핵심 광물이다.
수십 년에 걸친 전략 지배력 구축
1991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 광산 덕분에 세계 최대 희토류 공급국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중국은 희토류를 '전략' 자원으로 규정하고 외국 광산 기업의 국내 진출을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중국 국영 언론에 따르면 덩샤오핑 당시 중국 지도자는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우라늄 거래상이었던 미국인 미첼 프레스닉은 1990년대 초 중국의 주요 국영 무역회사와 협력을 시도했으나 중국 측한테서 매우 어려울 것이란 답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중국 국영 광업 대기업 민메탈스 직원들과의 저녁 식사에서 희토류가 거대 산업으로 자랄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들은 희토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희토류 산업 장악을 위해 단순 채굴을 넘어 가공 기술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 이는 당시 해외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전문 기술이었다.
미국 자산 매수와 기술 이전
1995년 중국 국영 기업들은 제너럴모터스(GM)가 시작한 희토류 소재와 자석 사업인 마그네퀜치 인수에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이후 몇 년간 마그네퀜치는 미국 내 모든 희토류 공장을 닫고 장비를 중국으로 옮겼다. 미국 엔지니어들은 중국에 가서 새 공장을 세울 기회를 얻었다.
마그네퀜치의 전 엔지니어 미첼 스펜서는 인디애나주 본사 공장의 자매 공장으로 중국 톈진에 공장을 세웠다. 그는 "도착했을 때 새로 지어지는 공장의 수와 속도가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톈진 공장의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리라는 지시를 받은 뒤 귀국하자마자 인디애나 공장이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미국 희토류 산업은 거의 무너졌다. 마운틴 패스 광산이 문을 닫았고, 희토류를 가공해 자석으로 만드는 거의 모든 미국 시설도 폐쇄됐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원소의 약 97%를 생산하며 사실상 세계 독점 지위를 확보했다.
저가 공세로 경쟁자 제거
2005년경부터 중국 정부는 희토류에 수출세를 매기는 등 규제를 강화해 서구 자석 제조업체들의 제품 생산 비용을 높였다. 이에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와 다른 기업들은 더 싼 원자재를 확보하려고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다.
2012년 오바마 행정부는 유럽연합, 일본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했다. 2014년 WTO는 중국의 수출 할당량이 불공정하다고 판결했고, 중국은 이를 포기했다. 미국으로의 수출이 급증하자 미국 희토류 기업 몰리코프는 가격 폭락으로 파산했다. 10여년 만에 두 번째로 중국의 저가 공세가 미국 유일의 희토류 광산 폐쇄에 영향을 미쳤다.
베이징은 WTO 판결 이후 수백 개에 달하던 국내 희토류 산업을 소수의 거대 기업으로 통합해 가격 경쟁력을 더욱 강화했다.
마운틴 패스는 결국 MP 머티리얼즈라는 미국 회사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광산 재가동을 위해 중국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중국 희토류 생산업체 성허 리소스는 선불 자금을 대고 MP의 지분 일부를 샀으며, MP의 희토류를 중국 구매자에게 팔았다.
최근 수출 제한 강화와 미국 대응
2021년이 되자 미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중국의 희토류 공급이 끊겨 가격이 급등한 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 능력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은 새 희토류 공장에 대규모 자금을 대기 시작했다.
중국희토류산업협회는 같은 해 베이징이 "중국의 절대적인 지배 지위"를 지키려면 국가 생산 할당량을 완화해야 한다고 공개 경고했다. 베이징은 2022년 생산량을 수년 만에 최대치인 25%까지 끌어올렸고, 이듬해에도 대폭 늘렸다. 가격이 폭락하면서 서방 생산업체들의 순이익에 타격을 입었다.
올해 7월 미국 정부는 마운틴 패스를 운영하며 가공과 자석 생산 시설을 짓고 있는 MP 머티리얼즈의 지분 15%를 4억 달러(약 5680억 원)에 샀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MP 머티리얼즈가 앞으로 저가 중국산 광물 유입에 맞설 수 있도록 희토류 가격 하한제 도입 등 새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이달 초 중국은 중국산 희토류를 써서 해외에서 자석을 만드는 기업들이 수출 전 베이징의 허가를 받도록 요구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서 중국산 제품에 10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했지만, 이후 이런 조치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투자 포럼에서 "20년, 25년 동안 우리는 경계하지 않았다"며 "아무도 지켜보지 않았고 모두가 잠자고 있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독점 지위가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국도 지난해 기준 중국산 희토류 수입 의존도가 79.8%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공공 비축과 민간 재고, 대체재 등으로 대응 역량은 확보하고 있다"며 "앞으로 수급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민관이 협력해 면밀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