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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 5조 달러 제국, 5대 성장 엔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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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 5조 달러 제국, 5대 성장 엔진의 비밀

AI 시대 10년 앞선 선견지명…'쿠다 생태계'로 시장 종속
칩 넘어 'AI 운영체제'로 진화…경쟁사 압도하는 '풀스택'
'5조 달러 제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지난 10월 30일 서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만찬 회장에 도착한 후 사인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5조 달러 제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지난 10월 30일 서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만찬 회장에 도착한 후 사인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5조 달러(약 7135조 원)의 거대 기업으로 등극한 것은 단순한 시장 기록 경신을 넘어, 반도체 기업의 정의를 새롭게 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출발해 세계 최첨단 인공지능(AI) 시스템의 심장이 되기까지, 엔비디아는 AI 혁명의 중심에 거대한 기술 제국을 건설했다.

업계는 이를 운이나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가 아닌, 철저한 선견지명과 생태계 장악력, 그리고 끊임없는 혁신이 빚어낸 필연의 결과로 분석한다. 단순한 'AI 붐의 수혜자'가 아니라, AI 시대의 기반 시설(인프라)을 설계한 '설계자'로 평가받는 엔비디아의 경이로운 부상 뒤에는 AI GPU에 대한 선제적 베팅, '쿠다(CUDA)' 소프트웨어라는 강력한 해자(垓子), 칩부터 클라우드까지 아우르는 '풀스택(full-stack, 전방위)' 제어, 분기가 아닌 수십 년을 내다본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비전, 그리고 AI 발전이 엔비디아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플라이휠 효과'라는 5가지 핵심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고 IT전문 매체 테크오베다스가 지난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I 시대 예견"…GPU에 대한 선제적 베팅


엔비디아는 AI가 화두가 되기 수년 전부터 그 미래를 내다봤다. 2000년대 초, 인텔과 AMD 등 경쟁사들이 중앙처리장치(CPU) 성능 개선에 몰두할 때, 젠슨 황 CEO는 수천 개의 연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 컴퓨팅'이 차세대 컴퓨팅 시대를 정의할 것이라 확신했다. GPU를 단순 그래픽용 장치가 아닌 '데이터 연산 프로세서'로 재정의하는 발상이었으며, 엔비디아는 신경망 학습과 대규모 행렬 연산에 GPU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구현한 최초의 상업 기업이었다.

이러한 통찰은 GPU를 단순히 게임 그래픽 처리용이 아닌, 신경망 훈련과 같은 데이터 집약 작업에 최적화하는 전략으로 이어졌다. 챗GPT나 거대 언어 모델(LLM)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엔비디아는 이러한 대규모 워크로드를 감당할 수 있는 칩을 설계하고 있었다.

그 결과, 2010년대 AI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엔비디아의 GPU는 이미 업계의 독보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후발주자로서 경쟁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경주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이 확신에 찬 초기 방향 전환은 엔비디아가 5조 달러(약 7153조 원)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핵심 동력으로 평가받는다. AI 시대가 열렸을 때 엔비디아는 '추격자'가 아닌 '기초 설계자'의 위치에서 출발했으며, 학계와 스타트업들이 자연스럽게 엔비디아 플랫폼을 선택하는 '생태계 고착(lock-in)' 현상을 이끌어냈다.

'쿠다'라는 강력한 해자…소프트웨어로 시장 종속


하드웨어가 지면을 장식하지만, 기술 전쟁의 승패는 종종 소프트웨어가 가른다. 2006년 엔비디아가 출시한 프로그래밍 플랫폼 '쿠다(CUDA)'는 엔비디아의 왕국을 지키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견고한 해자가 되었다.

쿠다는 개발자들이 GPU를 단순 이미지 렌더링 외의 복잡한 연산 작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GPU를 범용 연산(GPGPU)에 쉽게 활용하도록 만든 이 소프트웨어 계층은 AI 생태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개발자와 연구자들은 쿠다를 먼저 학습했고, 주요 대학들은 엔비디아 GPU를 기반으로 AI와 병렬 프로그래밍을 가르쳤다.

텐서플로, 파이토치 등 AI 개발의 핵심 라이브러리 역시 쿠다에 최적화되었다. 경쟁사 플랫폼으로 전환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고 기존 코드를 전면 재작성하고 엔지니어를 재교육해야만 한다.

거대한 개발자 생태계가 엔비디아에 기술로 종속된 것이다. 현대 컴퓨팅 환경에서 '개발자 마음(mindshare)'을 장악한 자가 시장을 지배하며, 이것이 엔비디아가 5조 달러(약 7153조 원) 거물이 된 또 다른 결정적 이유다. 쿠다는 전 세계 AI 개발의 '공통 언어'로 자리 잡았고, 이는 하드웨어 경쟁을 넘어 '개발 환경 표준화 전쟁'에서의 독점 승리를 의미했다.

칩부터 클라우드까지 '수직 계열화'…풀스택 제어


경쟁사들이 반도체 칩 자체(실리콘)에 집중할 때, 엔비디아는 AI 기반 시설 전체를 구축하는 원대한 전략을 실행했다. 경쟁사와 달리 AI 기반 시설 전체를 '하나의 통합 스택'으로 구성한 것이다.

▲칩: H100 및 차세대 B100 GPU로 전 세계 데이터 센터 시장을 석권했다.

▲네트워킹: 2019년 인수한 멜라녹스를 통해 AI 슈퍼컴퓨터의 중추인 고성능 네트워킹 기술 '인피니밴드'까지 확보했다.

▲시스템: AI 배포를 '플러그 앤 플레이' 방식으로 단순화한 'DGX' 및 '슈퍼팟' 플랫폼을 제공한다.

▲소프트웨어: 쿠다를 비롯해 cuDNN, 텐서RT 등 훈련에서 추론까지 AI 전 과정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 스택을 완성했다.

▲클라우드 플랫폼: '엔비디아 옴니버스'와 'AI 파운데이션스' 같은 서비스를 통해 디지털 트윈 및 생성형 AI 기능을 클라우드로 제공한다. (일명 AI-as-a-Service)

이 '처음부터 끝까지(end-to-end)' 제어력은 엔비디아가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AI 세계가 운영되는 플랫폼' 그 자체가 되었음을 뜻한다. 경쟁사들이 따라잡기 힘든 이 수직 지배력이야말로 엔비디아의 막강한 경쟁력이다. 엔비디아는 단순 칩 공급사를 넘어 '완전한 AI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했으며, 전방위 수직계열화를 통해 기술과 데이터 통제력을 독점하는 구조를 완성했다.

"분기 아닌 수십 년 본다"…젠슨 황의 장기 비전


엔비디아 제국의 중심에는 시류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창업자 젠슨 황 CEO가 있다. 1993년 공동 창립 이후 그는 단기 수익 추구가 아닌 장기 확신을 가지고 엔비디아를 이끌어왔다.

시장의 분석가들이 비웃을 때도 병렬 컴퓨팅에 과감히 베팅했으며, 기술 불황기에도 오히려 연구개발(R&D) 예산을 두 배로 늘리는 결단을 내렸다. 당장 가치가 보이지 않았던 로보틱스, 자동차 AI, 시뮬레이션(디지털 트윈) 분야로도 과감히 영토를 확장했다.

황 CEO는 관료주의 대신 기술 탁월함과 혁신에 몰두하는 문화를 구축했다. 엔지니어 중심, 실험 중심의 이 창의 문화와 그의 엔지니어링 우선 사고방식, 확고한 리더십은 엔비디아가 월스트리트의 분기별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미래의 획기적인 기술 혁신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5조 달러(약 7153조 원)의 기업가치는 인내심 있는 비전이 시장의 단기 압력을 이길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의 비전은 '하드웨어 기업'을 '플랫폼 제국'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AI 선순환 구조 '플라이휠'…"AI 발전이 지배력 강화"


오픈AI의 챗GPT-4부터 구글의 제미나이에 이르기까지,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획기적인 AI 기술은 엔비디아 GPU에 의존한다. 이러한 강력한 의존성은 AI가 발전할수록 엔비디아의 지배력이 더욱 강해지는 '자가 강화 플라이휠(flywheel)' 구조를 창출한다.

AI 연구자들과 스타트업들이 엔비디아 GPU로 모델을 훈련시키면, 투자자들은 엔비디아 플랫폼의 안정성을 믿고 이들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한다.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세계 3대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엔비디아 칩을 중심으로 AI 기반 시설을 경쟁하며 구축하고, 개발자들은 다시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를 우선 최적화한다.

이로써 AI 연구 성과가 곧 엔비디아의 매출 성장을 자극하는 'AI-성장 피드백 루프(flywheel)'가 완성됐다. 이 순환이 무한 반복되며 엔비디아 GPU 수요는 폭증하고 시장 지배력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공고해진다. 엔비디아는 AI 혁명에 단순히 합류한 것이 아니라, 그 혁명의 '기본 엔진'이 되었다. 시장의 과대광고나 거품이 아닌, 이 강력하고 멈출 수 없는 생태계의 중력이야말로 엔비디아가 5조 달러(약 7153조 원) 거대 기업이 된 궁극의 비결이다.

'AI 운영체제' 기업으로의 진화


엔비디아의 성공은 반도체 산업을 넘어 AI 기반 시설 시장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는 엔비디아의 전략이 'AI 기반 시설의 최상위 단일 플랫폼화'를 가속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엔비디아는 단순 반도체 기업에서 'AI 운영체제(OS)'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AMD, 인텔, 구글(TPU) 등 경쟁사들이 특정 영역에서 기술 격차 해소를 시도하고 있으나, 쿠다 생태계와 통합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진입장벽을 넘어서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