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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폭탄, 막상 닥치니 불발탄”… 美 기업들, 공포 벗고 ‘실속’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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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폭탄, 막상 닥치니 불발탄”… 美 기업들, 공포 벗고 ‘실속’ 챙겼다

WSJ “실제 관세 부담 12% 불과… 기업들 가격 전가로 충격 흡수”
1월 ‘공포’ → 11월 ‘자신감’… 실적 발표서 ‘위험’ 언급 1/5 토막
포드·허쉬 등 “면제 조치로 오히려 기회”… 한국 기업도 대미 전략 ‘숨 고르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밤(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의회에서 넘어온 임시예산안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밤(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의회에서 넘어온 임시예산안에 서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재계를 강타했던 무역 전쟁의 공포가 과장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막연한 두려움에 떨던 미국 기업 경영진은 실제 관세율이 예상보다 낮고, 각종 면제 조치가 이어지자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태세를 전환했다. “관리 가능한 수준(Manageable)”이라는 자신감이 퍼지며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2(현지시간), 올해 미국 상장 기업 임원들이 진행한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 5000건을 분석한 결과, 관세가 기업 활동에 미치는 실질적 위협이 당초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롤러코스터탄 관세 공포… 연초 패닉에서 연말 안정으로


올 한 해 미국 재계의 관세 체감도는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데이터 분석업체 ‘NL 애널리틱스(NL Analytics)’ 자료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1월 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관세와 위험(Risk)’을 함께 언급한 비중은 40% 가까이 치솟았다. 이어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125% 관세 부과가 거론되던 5월에는 이 비율이 50%를 웃돌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반기로 접어들며 분위기는 반전했다. 지난달 들어 실적 발표에서 관세 위험을 논의하는 비중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는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적응했거나, 정책의 실제 파급력이 우려했던 것보다 작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데이비드 마우라 스펙트럼 브랜드(Spectrum Brands)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달 투자자들과 가진 통화에서 관세로 빚어진 우리 사업의 경제적 혼란은 이제 끝났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실제 낸 돈은 12%… 비용은 소비자가 떠안아


경영진이 안정을 되찾은 배경에는 실제 비용이 예상보다 낮다는 현실적 이유가 자리한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기업들이 수입품에 대해 실제로 낸 관세는 가치 대비 약 12% 수준이었다. 이는 연초보다 10%포인트가량 오른 수치지만, 정부가 위협했던 고율 관세폭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이다.

파라그 타테 도이체은행 주식 분석가는 기업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관세가 관리 가능한 수준(manageable)’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가격 전가로 충격에 대응했다. 버나드 야로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업들이 지금까지 관세 비용의 약 3분의 2를 소비자에게 떠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1기 당시 기업들이 비용의 100% 가까이를 부담했던 것과 견주면 기업의 방어력이 상당히 높아진 셈이다.

포드와 허쉬의 반전… 위기가 곧 기회


주요 기업 사례를 뜯어보면 관세 정책의 이면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Ford)와 식품업체 허쉬(Hershey)의 사례가 대표 격이다.

제임스 팔리 포드 CEO는 지난 2월만 해도 관세 제안이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날려버릴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 포드는 지난 5월 관세 여파로 2025년 이자 및 세금 차감 전 순이익이 최대 20억 달러(294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미국 정부가 일부 수입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경쟁업체들이 주로 수입하는 중대형 트럭에 관세를 높이자 포드는 이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포드는 최근 관세로 빚어질 손실 전망치를 기존의 절반인 10억 달러(14700억 원) 수준으로 낮췄다. NL 애널리틱스 분석 결과, 포드 임원들의 관세 관련 발언은 1분기 부정적 기류가 강했으나 3분기 들어 긍정적 언급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초콜릿 제조업체 허쉬도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코코아 가격 급등과 관세 우려로 2분기까지 고전했으나, 지난 14일 백악관이 코코아 등 주요 식재료를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허쉬 관계자는 코코아가 전체 노출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번 조치로 내년 상황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물가 우려에 속도 조절 나선 정부… 일부 기업은 여전히 고전


물론 모든 기업이 웃은 것은 아니다. 주방 캐비닛 제조사 마스터브랜드(MasterBrand)는 지난 9월 중국산 부품에 50% 관세가 부과되면서 3분기 매출 총이익률이 1%포인트 가까이 깎였다. 데이비드 바냐드 CEO관세가 즉각 적용되기 때문에 충격을 완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시장 전반의 공포는 잦아드는 모양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점도 기업엔 긍정 신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쇠고기, 커피 등 수십 개 품목에 이어 브라질산 농산물 관세를 40% 인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대법원이 대통령의 무제한적 관세 부과 권한에 의문을 제기하는 심리를 진행 중인 점도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월가는 기업들이 공급망을 다시 짜고 면제 조치를 확보하면서, ‘무역 전쟁이라는 변수를 더는 통제 불가능한 재앙이 아닌 경영상 해결해야 할 하나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도 안도의 한숨불확실성 걷히며 대미 투자 전략 재정비


미국 현지 기업들의 분위기 반전은 한국 재계에도 나타난다. 삼성전자,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미국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둔 한국 기업들도 연초 관세 공포에서 벗어나 실리적인 대응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포드와 유사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높여 관세 장벽을 피하는 동시에, 경쟁 수입차 업체들이 고율 관세로 타격을 입는 사이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연초에는 부품 조달 비용 급증을 우려했으나, 필수 부품에 대한 예외 조치가 인정되고 현지 생산분에 대한 혜택이 유지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고 전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업계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 기업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기류가 유지되면서, ‘동맹국 면제품목별 예외를 통해 실질적 타격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미국 기업들이 가격 전가로 충격을 흡수했듯, 한국 기업들도 프리미엄 제품 위주로 라인업을 재편해 관세 비용을 상쇄하고 있다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동성이 여전한 만큼, 개별 기업 차원의 로비와 공급망 다변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2025년의 무역 전쟁은 공포가 아닌 적응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히면서, 누가 더 빨리 변화된 룰(Rule)을 활용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