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머우의 '28나노 올인' 결단, 일본 반도체 부활의 역사적 선례로 부상
4만 명 엔지니어 부족과 지정학적 리스크 극복…'국가 안보' 논리 설득이 관건
4만 명 엔지니어 부족과 지정학적 리스크 극복…'국가 안보' 논리 설득이 관건
이미지 확대보기일본의 라피더스(Rapidus)가 시도하는 도전은 단순한 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선다. 블룸버그 오피니언의 캐서린 소벡(Catherine Thorbecke) 칼럼니스트는 라피더스의 행보를 '아폴로 계획(Apollo missions)'에 비유했다. 이는 달 착륙 작전에 버금가는 기술적 정밀성과 막대한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설립된 지 불과 3년 남짓 된 국영 벤처기업이 수 세대의 기술 혁신을 단숨에 건너뛰어, 디지털 기기의 핵심 엔진인 최첨단 2나노미터(nm) 로직 칩의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소수의 베테랑 반도체 기업들조차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이 복잡하고 값비싼 과제에 일본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회의론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만약 라피더스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완수한다면, 이는 일본 기술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는 거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대만 TSMC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특히 최첨단 칩 분야에서 TSMC의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패권이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은 아니었다. TSMC 창업자 장중머우(張忠謀)는 올해 초 팟캐스트 'Acquired'와의 인터뷰에서 15년 전 당시 최첨단 공정이었던 28나노 생산에 사활을 걸었던 결정적 순간을 회고하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사람의 일에는 밀물(tide)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물결을 타면 행운으로 이어진다." 올해 94세인 반도체 거목은 당시를 회상하며 "28나노 공정이 바로 우리가 타야 할 밀물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그 결정은 선견지명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결코 확실한 승부수가 아니었다. TSMC는 이 도박을 위해 자본 지출을 3배나 늘려야 했고, 장중머우는 이를 위해 이사회를 설득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시 시장 경쟁은 여전히 치열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팽배해 있었다. 심지어 TSMC의 이전 세대 기술이었던 40나노 공정은 생산된 칩 중 양품의 비율을 뜻하는 '수율(yield)'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는 당시나 지금이나 TSMC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인 엔비디아(Nvidia Corp)와의 관계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8나노 공정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TSMC의 존재를 규정짓는 결정적 한 수가 되었다. 이는 스마트폰 붐의 도래와 맞물려 더 작고 강력한 칩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대만에게 이 결정은 단순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반도체 방패)'를 구축하고 지정학적·경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다. 수년에 걸쳐 TSMC는 수많은 경쟁자를 정리하며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현재 일본이 마주한 야망은 TSMC의 당시 상황보다 훨씬 거대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맥락의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쉽다. 그러나 지금 멈춰 서 있는 것은 찰나의 기회를 놓치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센터 붐은 초미세 공정 프로세서에 대한 전 세계적 수요를 폭증시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반도체 부족이 전체 산업을 얼마나 쉽게 마비시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라피더스 회장이 IBM의 전설적인 연구원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은 일본에 2나노 칩 제조에 필요한 결정적 노하우를 제공했다. 이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기술적 도약의 발판이자 파트너십의 시작이었다. 수십 년 전 잃어버렸던 일본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재건할 수 있는 실낱같은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지정학적 바람 또한 일본 쪽으로 불고 있다. 최근 대만 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간의 외교적 긴장은, 중국이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 대만 지역에 전 세계 전략 기술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본 정부가 뼈저리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TSMC의 교훈: 생태계 구축과 인재 양성의 중요성
물론 라피더스 앞에는 거대한 장벽들이 가로막고 있다. TSMC가 가진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현지 공급망 생태계다. 일본은 이를 다시 처음부터 쌓아 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희망적인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일본 규슈 남단 구마모토현에 건설된 TSMC 공장은 일본의 반도체 제조 매력도를 입증하는 사례다. 장중머우는 지난해 구마모토 공장 개소식에서 이를 "일본 반도체 르네상스"의 시작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라피더스가 이러한 흐름에 편승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모리스 창의 일본 제조업에 대한 존경심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재직 시절 방문한 일본 공장의 수율이 미국 공장의 두 배에 달하는 것을 목격했던 경험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중의 지지와 지정학적 당위성 확보
라피더스의 성공을 위해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대중의 지지를 얻는 일이다. 대만에서 TSMC의 성공은 단순한 기업의 성취가 아닌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자, 중국의 팽창주의적 위협에 맞서는 억지력으로 인식된다. 대만 시민들과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TSMC의 성공을 열렬히 응원한다. 반면, 라피더스는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인 만큼 대중의 엄격한 감시를 피할 수 없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국가 안보적 차원의 중요성을 직설적이고 반복적으로 설파해야 한다. 미세한 실리콘 조각을 만드는 일은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만큼 화려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될 지정학적 보상은 달 착륙 못지않게 실질적이고 거대하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능력의 복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정학적 영광과 안보적 가치를 대중에게 더 강력하게 인식시킬수록, 사업 추진을 위한 지지 기반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물결은 차오르고 있다. 일본이 이 물결을 타고 나아갈지, 아니면 휩쓸려 사라질지는 향후 수십 년간 일본의 기술적 미래를 결정짓는 척도가 될 것이다. 반도체 생산에서도,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도, 결국 모든 것은 '타이밍'에 달려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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