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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韓·美, 우라늄 농축 합작사 설립 합의…'핵 잠재력' 확보 교두보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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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韓·美, 우라늄 농축 합작사 설립 합의…'핵 잠재력' 확보 교두보 열리나

이재명 대통령 "트럼프와 50대 50 합작사 합의"…러 의존도 낮추고 '농축 주권' 확보 시동
핵잠수함 건조지 놓고는 '동상이몽'…트럼프 "필라델피아 써라" vs 韓 "기술·인력 부족, 국내가 답"
대한민국 해군의 도산안창호급(KSS-III) 잠수함이 항해하는 모습. 한·미 양국 정상이 최근 우라늄 농축 합작사 설립에 합의하고 핵추진 잠수함 도입 논의를 구체화하면서, 한국의 독자적 핵 잠재력 확보와 원자력 협정 개정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한국 해군이미지 확대보기
대한민국 해군의 도산안창호급(KSS-III) 잠수함이 항해하는 모습. 한·미 양국 정상이 최근 우라늄 농축 합작사 설립에 합의하고 핵추진 잠수함 도입 논의를 구체화하면서, 한국의 독자적 핵 잠재력 확보와 원자력 협정 개정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한국 해군
대한민국과 미국이 원자력 발전소 가동에 필수적인 농축 우라늄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50대 50' 지분의 합작 투자사(Joint Venture)를 설립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는 한국이 그동안 러시아 등 외부 공급망에 의존해왔던 핵연료 수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핵 잠재력(Nuclear Latency)' 확보를 위한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용인하면서도 건조 장소를 미국 본토로 고집하고 있어, 세부 실행 단계에서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고된다.

5일(현지시각) 안보 전문 매체 '내셔널 시큐리티 저널은 지난 2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와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인용해, 한·미 양국이 한국 내 26기 원전 가동을 위한 농축 우라늄 확보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비즈니스 본능'과 한국의 '에너지 안보' 결합


이번 합의는 지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 포럼을 계기로 성사된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성과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수요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가 농축 우라늄 연료의 약 3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며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스스로 생산해 큰 수익을 내자(making a big profit)'며 파트너십을 제안했고, 결국 50대 50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원자력 에너지 생산국으로, 원전이 국가 전력의 약 40%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1972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묶여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독자적인 권한이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제약 탓에 한국은 원전 연료를 러시아 등 원자력 선진국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이번 합작사 설립 합의는 표면적으로는 러시아산 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자는 '비즈니스 동맹'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미국이 한국의 '평화적 목적'을 전제로 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공정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적 선회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핵추진 잠수함, '오커스(AUKUS)' 향한 징검다리?


이번 합의는 단순히 발전용 연료 확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숙원 사업인 '핵추진 잠수함' 도입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회담 직후 한국의 독자적인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approval)'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파트너로 합류하는 수순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건조 장소'를 둘러싼 양국의 엇박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방산 기업 한화가 최근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것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조선업 부활을 노리는 트럼프식 '자국 우선주의'가 반영된 요구다.

반면, 한국 측 입장은 단호하다. 한화 관계자들과 한국 국방 전문가들은 필라델피아 조선소가 잠수함 건조를 위한 특수 설비가 부족하고, 필요한 엔지니어링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조선소들은 인력난과 설비 노후화로 미 해군의 발주 물량조차 제때 소화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은 기술적 완성도와 납기를 고려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한국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핵 잠재력' 확보 vs '비확산' 원칙의 딜레마


이번 합작사 설립과 핵잠수함 논의의 기저에는 '핵 잠재력(Nuclear Latency)'을 둘러싼 미묘한 신경전이 흐르고 있다. 핵 잠재력이란 유사시 짧은 시간 내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산업적 능력을 의미한다.

한국 내 국방·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고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될 경우를 대비해,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국내에 둠으로써 최소한의 '보험'을 들어둬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하다. 매체는 "서울에서 만난 다수의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미국이 더 이상 북한의 핵 공격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해주지 않을 상황에 대한 우려가 깊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 내 일부 관료들은 여전히 한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국제적인 핵무기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기술은 본질적으로 핵무기 제조 기술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는 핵무장 의도가 전혀 없으며, 이는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 정부 일각에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핵무장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라며, 한·미 동맹을 훼손하면서까지 핵무기를 개발할 선택지는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결국 이번 합의는 한국이 '원자력 주권'을 확보하고 안보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핵잠수함 건조 장소를 둘러싼 이견 조율과 농축 시설의 국내 유치 여부 등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트럼프 행정부의 실리 추구와 한국의 안보 수요가 맞물린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과연 '한·미 원자력 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