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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폐기물' 지우는 러시아의 연금술… 600℃ 견디는 '슈퍼 강철'로 4세대 원전 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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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폐기물' 지우는 러시아의 연금술… 600℃ 견디는 '슈퍼 강철'로 4세대 원전 선점

국영 로사톰, 납 냉각 고속로용 내열 소재·용접 기술 확보… ‘프르리브’ 프로젝트 가속
국내 원전 전문가 “SMR 시장 주도권, 이제 ‘초고온 소재’ 싸움으로 번졌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Rosatom)이 600℃(1112°F)의 극한 환경에서도 기계적 성질을 유지하는 신형 내열 오스테나이트 강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Rosatom)이 600℃(1112°F)의 극한 환경에서도 기계적 성질을 유지하는 신형 내열 오스테나이트 강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미지=제미나이3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이 글로벌 경제의 핵심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러시아가 차세대 원전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폐쇄형 핵연료 주기 실현에 성큼 다가섰다.

에너지 전문 매체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Rosatom)이 600℃(1112°F)의 극한 환경에서도 기계적 성질을 유지하는 신형 내열 오스테나이트 강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핵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꿈의 원전’ 상용화를 앞당기는 중대한 기술적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액체 납 부식 견디는 ‘한계 돌파’… 기존 원전보다 2배 뜨거운 열 다스린다


러시아 국립 중앙기계공학연구소(CNIITMASH)가 이번에 선보인 신소재는 납 냉각 방식의 고속 중성자 원자로(LFR)를 위해 특수 설계된 강철이다. 액체 납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차세대 고속로는 운전 온도가 최소 500℃에서 최대 600℃에 달한다.

이는 기존 가압경수로(VVER) 방식의 일반적인 운용 온도인 320℃~350℃를 두 배 가까이 웃도는 수준이다. 일반적인 소재로는 초고온 상태의 액체 납이 일으키는 강력한 부식과 열 변형을 견디기 어렵다.

세르게이 로가쇼프 CNIITMASH 소장은 이번 발표에서 “컴퓨터 모델링과 중금속 냉각재 시스템 데이터를 정밀 분석해 소재를 설계했다”며 “새로운 강철은 방사선 저항성과 부식 방지 성능은 물론 600℃에서도 탁월한 열 안정성을 유지하며, 특히 기존 원전 구조물에 쓰이던 기준 강철보다 장기 강도 특성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소재 개발에 그치지 않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레이저 용접 기술’ 시험도 마쳤다. 오스테나이트 강철과 마르텐사이트-페라이트 강철을 결합하는 이 기술은 기존 아크 용접보다 제작 속도가 빠르면서도 원전 산업의 엄격한 안전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이는 신형 원자로뿐 아니라 기존 VVER나 RITM 단위 원전에도 즉시 적용할 수 있는 범용성까지 갖췄음을 의미한다.

‘프르리브’ 프로젝트 가동… 핵연료 무한 루프 시대 여나


러시아가 소재 혁신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국책 사업인 ‘프르리브(Proryv·돌파구)’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폐쇄형 핵연료 주기(CNFC)’의 산업적 구현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다시 연료로 투입하는 이 방식이 완성되면 우라늄 이용 효율은 극대화되고 방사성 폐기물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로사톰은 현재 시베리아 세베르스크 지역에 300MW(메가와트)급 납 냉각 실증 원자로인 ‘BREST-OD-300’을 포함한 거대 원자력 복합 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 시설에는 조사후 혼합 질화물(MNUP) 연료를 재처리하는 모듈과 재활용 원료로 새 연료봉을 만드는 제조 시설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에 개발된 슈퍼 강철은 이 복합 단지의 핵심 장비 제작에 투입되어 기술적 완성도를 입증하게 된다.

1600℃ 견디는 탄소 복합재까지… “에너지 패권, 소재 과학에 달렸다”


러시아의 기술 야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로사톰 기계제작 부문 엔지니어들은 초고온 가스냉각로(HTGR)를 겨냥해 탄소-탄소 복합 소재 개발에서도 성과를 냈다.

이 복합재는 1300℃에서 물리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최고 1600℃에서도 기계적 성질을 잃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술은 헬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200MW급 열출력 원자로인 원자력 에너지 기술 스테이션(AETS)의 핵심 부품으로 쓰일 전망이다. 해당 시스템은 850℃의 출구 온도를 확보해 750℃에 이르는 초고온 증기를 생산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원자력을 활용한 대량의 수소 생산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국내 원자력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이러한 행보가 글로벌 소형모듈원전(SMR) 및 4세대 원전 시장의 주도권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원자력 연구소 관계자는 “미래 원전 경쟁은 결국 ‘누가 더 높은 온도를 안전하게 다스리는가’라는 소재 과학의 싸움”이라며 “러시아가 실증 노형과 전용 소재를 패키지로 확보함에 따라 차세대 원전 수출 시장에서 기술적 격차가 벌어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이번 신소재 개발은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4세대 원전 시장의 ‘표준 선점’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국 역시 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핵심 소재 분야의 원천 기술 확보와 실증 인프라 구축에 더욱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