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해상 통행세 공식화하며 ‘자유 항행 시대’ 종말 선언
위안화 결제 요구에 달러 패권 흔들… 삼성·SK하이닉스 공급망 ‘지정학적 족쇄’
위안화 결제 요구에 달러 패권 흔들… 삼성·SK하이닉스 공급망 ‘지정학적 족쇄’
이미지 확대보기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일(현지시각) 이란 전쟁 발발 6주 만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당국의 '통행료 요금소'가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해협 인근에는 700척 이상의 선박이 발이 묶였으며, 약 2만 명의 선원이 사실상 바다 위 인질로 잡혀 있는 실정이다.
테헤란의 ‘해상 검문소’… 위안화·암호화폐 결제 요구에 달러 패권 흔들
이란 혁명수비대는 국가별 우호도에 따라 통행 순위를 매기며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약 29억 7100만 원)에 달하는 통행료를 요구한다. 이는 17세기 전근대적 통행세가 21세기 핵심 수로에 부활한 격으로, 전 세계 석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20%가 인질로 잡혔다.
주목할 점은 이란이 통행료 결제 수단으로 미국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나 암호화폐를 강제한다는 사실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국제 무역에서 달러의 입지를 약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한다. 실제 이란발 물류 마비로 벙커유 가격과 전쟁 보험료가 급등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대혼란에 빠졌다.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글로벌 병목지점… 중국에 ‘나쁜 선례’
전문가들은 이란의 이번 조치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에 위험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 미국 해군 중장 존 밀러는 "전 세계가 호르무즈의 통행료를 수용한다면, 중국이 남중국해 전체를 영해라고 주장하며 통제할 때 막을 명분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 세계 주요 수로는 동시다발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먼저 발트해에서는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이 제재를 무시하고 가스 수송 강행 중이고, 흑해에서는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세계 곡물 공급망이 위협받고 있다. 홍해에서도 후티 반군의 민간 선박 공격으로 수에즈 운하 통행량이 급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해군력이 중동에 집중된 사이 중국은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과 영향력 확대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어, 동북아시아 해상 물류망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K-반도체 6개월 비축분 확보했지만… 가동률 하락·환차손 리스크 직면
한국 경제의 핵심축인 반도체 산업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특수 가스와 화학 소재 중 상당수가 이 경로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핵심 소재에 대해 최소 4~6개월 치의 비축분을 확보하고 있으나, 봉쇄가 장기화하면 2nm 등 첨단 공정 가동률 하락이 불가피하다.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특성상 수입 단가 상승은 국내 휘발유 및 전기요금의 연쇄 인상을 부추겨 ‘스테그플레이션(S공포)’ 압력을 높인다. 일각에서는 희망봉 우회 항로를 대안으로 거론하지만, 이는 운송 기간 연장과 운임 폭등을 수반해 수출 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지정학적 족쇄'가 된다.
“자유 항행의 시대는 끝났다”… 시장 참여자가 주목해야 할 3대 지표
살바토레 메르코글리아노 캠벨대 교수는 "우리는 물동량과 속도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지금 그 시스템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며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호르무즈의 위기는 멀리 있는 전쟁이 아니라, 내일 아침 우리 집 앞 주유소 가격표를 바꾸는 생존의 문제다.
이제 시장 참여자들은 전쟁의 참혹함에 머물지 말고, 내 자산의 안전을 결정할 세 가지 지표를 냉정하게 주시해야 한다. 우선 물류비용의 바로미터인 발틱운임지수(BDI)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다. 운임 상승은 기업의 영업이익을 갉아먹는 직접적인 독소다.
둘째는 위안화 결제 비중이다. 이란과 중국이 달러를 배제하고 위안화나 암호화폐로 결제망을 구축하는 것은 달러 패권의 균열을 의미하며, 이는 곧 우리 환율과 자산 가치의 변동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국내 정유·화학주의 원가 전이 속도다. 유가 상승분이 제품 가격에 반영되는 속도가 원가 상승을 따라잡지 못하면 국내 핵심 산업의 실적 악화는 피할 수 없다.
해상 통행세는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한국 수출 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는 지정학적 족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업계는 수입선 다변화와 함께 해상 물류의 실시간 리스크 관리 체계를 재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바다의 자유가 끝난 '각자도생'의 시대, 정부와 기업은 수입선 다변화와 실시간 물류 리스크 관리 체계를 재구축해야 한다. 호르무즈의 위기는 멀리 있는 남의 나라 전쟁이 아니다. 위기는 늘 가장 약한 연결고리부터 파고든다. 더 정교한 생존 전략을 짜야 할 때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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