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 "핵 포기 의지 못 확인" 21시간 마라톤 회담 빈손 종료… 이란, 농축권 양보 거부
이스파한 지하 터널에 핵폭탄 10여 개분 은닉… OECD, 한국 성장률 2.1%→1.7% 하향
이스파한 지하 터널에 핵폭탄 10여 개분 은닉… OECD, 한국 성장률 2.1%→1.7% 하향
이미지 확대보기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시각)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도 이란이 원심분리기와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포함해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자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에 이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이유는 분명하다. 수입 원유의 약 70%를 걸프 지역에서 조달하고, 그 가운데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에서, 협상 결렬은 곧 해협 재봉쇄와 유가 재폭등의 단초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3월 26일 중간경제전망을 통해 한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 하락폭은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영국(0.5%포인트) 다음으로 크다. 이 전망치는 이란 사태 전후의 불확실성을 일부 반영한 수치로, 실제 유가 경로에 따라 추가 하향 위험도 남아 있다.
"핵 포기 약속 못 받았다"… 47년 만의 대화, 왜 무너졌나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세레나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이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해야 한다"며 "아직 그런 의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979년 양국 외교관계 단절 이후 47년 만에 성사된 이 역사적 대화는 핵 문제에서 좌초했다.
양측의 간극은 구조에서 비롯한다. 미국은 우라늄 농축의 영구 중단, 60% 물질의 전량 반출, IAEA 상시 사찰, 대리세력 지원 중단 등 15개 항목을 요구했다.
이란은 농축권을 '양도할 수 없는 주권'으로 규정하면서도 60% 농축 우라늄을 20% 수준으로 희석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60%에서 무기급(90%)까지는 약 일주일, 20%에서는 몇 주가 걸린다는 기술적 차이가 있으나, 미국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더 강경한 발언을 내놨다. "440㎏의 고농축 우라늄을 넘기지 않으면 직접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군사 작전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란의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정반대로 "휴전 계획의 핵심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 권리 인정"이라고 맞섰다.
다만 협상 채널이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협상과 문서 교환은 계속된다"고 밝혔고, 밴스 부통령도 "이것이 우리의 최종적이고 최선의 제안"이라며 이란의 수용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남겼다.
450㎏의 행방… 미국도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WSJ에 따르면, 이란은 이스파한 핵 시설 지하 깊숙한 터널에 고농축 우라늄의 절반가량을 관에 담아 매장했다. 나탄즈 인근 '곡괭이 산'의 요새화된 터널 단지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관통폭탄(MOP)조차 도달하지 못하는 깊이에 자리한다. IAEA가 지난해 6월 확인한 이란의 60% 농축 우라늄은 441.0㎏이었고, 이후 사찰은 중단된 상태다. 미국 정보당국은 전쟁 전 기준으로 약 450㎏을 보유한 것으로 본다. 전문가들은 이 물량이 추가 농축 시 핵탄두 10여 기분에 상당한다고 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조차 우라늄의 정확한 위치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IAEA 관계자를 인용해 이란 핵물질 중 절반만 이스파한 인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는 나탄즈·포르도는 물론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분산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로버트 켈리 전 IAEA 국장은 블룸버그에 "위성 사진은 우라늄 재고 위치를 확인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이 핵 물질 컨테이너 수를 아는 유일한 이유는 IAEA가 알려줬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미 정보기관들은 이란이 지난해 폭격으로 매몰된 핵 시설 지하에 좁은 접근 통로를 뚫어 고농축 우라늄에 다시 접근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은 높이 약 91㎝의 실린더 16개에 나눠 저장할 수 있고 개당 무게가 25㎏에 불과해 사람 손으로 옮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특수부대를 이란에 투입해 우라늄을 직접 탈취하는 방안까지 검토됐으나, 뉴욕타임스는 "행정부의 우라늄 반출에 대한 열의가 다소 꺾였다"고 전했다.
에릭 브루어 전 미 국가안보회의(NSC) 이란 담당관은 WSJ에 "이란이 그 물질들을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지난 2월 협상 때보다 더 높은 조건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무기화 측면에서 이번 피해는 제조 과정에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수준"이라고 평가해, 핵심 물질은 건재하되 무기 완성까지의 경로는 상당히 험난해졌다는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한국 경제, 왜 이란 핵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나
협상 결렬의 파장은 곧바로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한국 경제에 전달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6년 호르무즈 리스크 확대에 따른 한국경제 충격 진단' 브리프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두바이유는 배럴당 157.66달러까지 폭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돌파하며 코스피는 7.24% 급락했다. 제조업 원가는 최대 5.19% 상승했고, 반도체·IT 산업 핵심 소재인 브롬·헬륨 공급망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산업연구원 역시 호르무즈 봉쇄가 3개월 이상 장기화되면 한국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최대 11.8%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선박 7척이 발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4월 5000만 배럴, 5월 6000만 배럴 규모의 대체 원유를 확보하는 한편, 비축유와 대체 원유를 활용해 수급 안정에 나섰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더라도 산업부가 맞닥뜨린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완충 요인도 있다. 미국의 베선트 재무장관은 "중동 전쟁이 끝나면 유가가 80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고, 한국 정부는 대체 원유 조달선 다변화와 비축유 방출로 당장의 수급 위기는 방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3가지 지표
향후 사태 전개에 따라 세 가지 갈림길이 펼쳐진다.
우선 낙관적 시나리오는 밴스 부통령이 남긴 '최종 제안'을 이란이 수용하고, 우라늄 희석과 IAEA 사찰 복원에 합의하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정상화되면 유가는 배럴당 80~90달러대로 안정될 수 있다. 이란 내 강경파의 반발이 변수다.
기본 시나리오는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2주 휴전은 연장되나 핵심 쟁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그림이다. 유가는 100~110달러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한국 경제는 성장률 1%대 후반, 물가 3~4%대의 스태그플레이션 초입에 놓인다.
비관적 시나리오는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미국이 군사 작전을 재개하는 것이다. 골드만삭스 등 시장에서는 일부 극단 시나리오로 14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연구원은 유가 150~180달러, LNG 150~200% 상승 시 제조업 생산비가 최대 11.8%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참여자들이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지표는 세 가지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일일 통과 건수다. 평시 50척이 오가던 해협에 현재 0~1척만 통과하는 상황이 언제 풀리느냐가 에너지 위기의 출구 신호다. 둘째, 원·달러 환율과 국제유가의 동반 급등 여부다. 이 두 지표가 동시에 뛰는 구간은 외국인 자금 이탈의 전조로 읽힌다. 셋째, 미국과 이란 간 문서 교환 채널이 유지되는지다.
450㎏의 우라늄이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 있는 한,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으며, 그 비용은 한국의 주유소·공장·증시에서 고스란히 치러진다. 이란이 핵 카드를 쥔 채 양보를 거부하는 지금, 한국 경제의 에너지 안보 취약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