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K-팝 ‘종주국’의 굴욕… 5만명급 공연장 전무에 테일러 스위프트도 발길 돌렸다

글로벌이코노믹

K-팝 ‘종주국’의 굴욕… 5만명급 공연장 전무에 테일러 스위프트도 발길 돌렸다

수도권 2600만 배후 수요에도 ‘스타디움 기근’… 인프라 낙후가 ‘한류 경제효과’ 갉아먹어
‘K-컬처 밸리’ 10년 표류가 부른 참사… 잠실 리모델링 겹쳐 2030년까지 ‘공연 난민’ 위기
K-팝이 전 세계 주류 문화로 우뚝 섰지만 정작 종주국의 공연 인프라는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외신의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K-팝이 전 세계 주류 문화로 우뚝 섰지만 정작 종주국의 공연 인프라는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외신의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지=제미나이3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4년 아시아 투어 당시 일본 도쿄는 찾으면서도 한국 서울을 건너뛴 배경에는 ‘공연장 부재’라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자리 잡고 있다. K-팝이 전 세계 주류 문화로 우뚝 섰지만, 정작 종주국의 공연 인프라는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외신의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3일(현지 시각) "한국은 세계적인 A급 스타들을 배출하고도 이들을 수용할 현대적 공연장을 확보하지 못한 역설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방탄소년단(BTS)이 최근 월드투어 서막을 서울 중심지가 아닌 경기도 고양시의 22년 된 노후 축구장에서 연 것을 사례로 들면서 한국의 공연 인프라 기근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주요 대형 공연장 ‘연쇄 셧다운’…갈 곳 없는 아티스트와 팬들


대한민국 공연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5년 국내 공연 시장 총 티켓 판매액은 약 1조7326억 원을 기록, 전년(1조4589억 원) 대비 18.8% 급증했다. 하지만 5만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인프라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가장 큰 규모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7만 석)은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 공사로 오는 2026년 12월까지 사용할 수 없다. 서울월드컵경기장(6만6000석)도 잔디 훼손을 우려한 축구계와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대관 문턱이 극도로 높아졌다. 고양종합운동장(4만 석)의 경우 지붕 없는 야외 경기장인 데다 음향 시설이 열악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토미 진호 윤(윤동진) 공연 프로듀서는 여러 인터뷰에서 마돈나와 아델이 과거 아시아 투어에서 한국을 제외한 이유 역시 적절한 규모의 공연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되는 월드투어의 특성상 최소 3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야 수지 타산이 맞는데, 한국에는 이를 충족할 '아레나(공연 전용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정치 논리에 발목 잡힌 ‘K-컬처 밸리’…10년 표류가 부른 인프라 참사


공연장 기근을 해결할 유일한 해법으로 기대를 모았던 고양시 ‘K-컬처 밸리’ 사업의 좌초는 인프라 낙후를 심화시킨 결정적 실책으로 꼽힌다. 2만 석 규모의 아레나를 포함한 복합 단지 프로젝트였으나 지난 10년간 정치적 외풍과 행정 갈등 속에 공정률 17%에서 멈춰 섰다.

당초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계획 발표 이후 CJ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으나 총수 구속과 경기도와의 인허가 갈등, 지연 배상금 분쟁 등이 얽히며 결국 계약이 해지됐다. 업계 전문가는 "정치적 논리에 밀려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이 한국은 글로벌 공연 허브로 도약할 기회비용을 상실했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인프라 공백은 팬들의 경제적 부담으로 직결된다. 좌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암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실제로 그룹 NCT 위시의 팬미팅 티켓은 재판매 시장에서 정가의 4배인 290달러(약 42만 원)에 거래되는 등 시장 왜곡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2030년에나 숨통?…‘소프트웨어’만 화려한 사상누각 위기


전망은 밝지 않다. 글로벌 공연 기획사 라이브네이션이 아레나 건설 사업권을 확보했으나 안전 검토 등의 사유로 완공 시점이 2030년으로 밀렸다. 내년 개장할 창동 서울아레나(2만8000석)가 유일한 ‘숨구멍’이지만, 이 역시 5만 명 이상의 스타디움급 공연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K-컬처 밸리가 제때 완공됐더라면 글로벌 자본의 연쇄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인프라 구축 실패가 국가 문화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한편 향후 업계와 시장 참여자가 주목해야 할 지표는 첫째, 잠실 주경기장 재개장 시점이다. 2026년 말 이후 대관 경쟁 완화 여부를 봐야 한다. 둘째, 수도권 아레나 공정률이다. 서울아레나(도봉구) 및 CJ라이브시티 재추진 속도도 중요하다. 셋째, 글로벌 팝스타 투어 일정이다. 도쿄·방콕 대비 서울 포함 빈도 확인도 중요하다.

K-팝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이를 담아낼 '그릇'의 부재는 한국 문화산업의 가장 뼈아픈 실책이 될 수 있다. 하드웨어가 뒷받침되지 않는 소프트웨어의 번영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시장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