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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움직이는 ‘뇌의 숨겨진 지도’…도파민, 위치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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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움직이는 ‘뇌의 숨겨진 지도’…도파민, 위치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UNIST, 뇌 기저핵 ‘공간 규칙’ 첫 규명…파킨슨병 맞춤 치료 단서 제시
울산과학연구원(UNIST) 캠퍼스 전경. 사진=UNIST이미지 확대보기
울산과학연구원(UNIST) 캠퍼스 전경. 사진=UNIST
우리가 팔을 뻗고 걷는 등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할 때, 뇌는 수많은 신호를 정교하게 조율한다. 이 과정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도파민이 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영역이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 수수께끼의 한 조각을 풀었다. 도파민이 뇌 속 특정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조절하는 ‘공간적 규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과 김재익 교수 연구팀은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기저핵’에서 도파민의 신호 조절 방식이 세부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규명했다고 2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뇌의 ‘브레이크 장치’, 위치마다 다른 조절 방식


기저핵은 우리 몸의 움직임과 행동을 조절하는 핵심 뇌 회로다. 그중 ‘간접경로’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쉽게 말해 원하는 행동만 남기고 나머지를 걸러내는 ‘브레이크’ 장치다.

연구팀은 이 경로에서 중요한 중계 역할을 하는 ‘창백핵’에 주목했다. 창백핵은 신경 신호를 받아 다시 다른 부위로 전달하며, 움직임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분석 결과, 같은 도파민이라도 창백핵 내부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영역에서는 도파민이 신호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이는 수도꼭지를 잠그듯 신호의 양을 줄이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다른 영역에서는 신호에 대한 반응을 둔하게 만들어, 같은 신호라도 덜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조절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를 음향 조절 장치에 비유했다. 어떤 구역은 ‘전체 볼륨’을 낮추고, 다른 구역은 특정 음역만 줄이는 식으로 서로 다른 조절 방식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뇌는 좁은 공간 안에서도 도파민을 이용해 신호를 정교하게 나눠 조절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패턴은 일정한 ‘공간 규칙’을 이루고 있었다.

파킨슨병 뇌에서는 ‘조절 지도’ 자체가 뒤바뀐다


연구팀은 도파민이 부족한 상황도 함께 분석했다. 파킨슨병처럼 도파민 분비가 줄어든 상태를 모사한 실험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단순히 신호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뇌 속 조절 방식 자체가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기존에는 영향을 받지 않던 영역에서 새로운 신호 조절이 나타나고, 반대로 기존에 강하게 작용하던 영역에서는 효과가 약해졌다.

이는 도파민 부족이 단순한 기능 저하가 아니라, 뇌 회로의 작동 원리 자체를 재편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파킨슨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운동 이상과 행동 변화의 원인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제1저자인 이영은 연구원은 “도파민 감소가 단순히 신호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뇌 회로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유니스트(UNIST) 김재익 교수(왼쪽)와 유니스트(UNIST) 이영은 연구원. 사진= 유니스트(UNIST) 대외협력팀이미지 확대보기
유니스트(UNIST) 김재익 교수(왼쪽)와 유니스트(UNIST) 이영은 연구원. 사진= 유니스트(UNIST) 대외협력팀


“정밀 치료로 가는 길 열렸다”


이번 연구는 향후 치료 전략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기존에는 도파민을 전체적으로 보충하거나 조절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됐지만, 이번 연구는 뇌의 특정 위치와 수용체를 정밀하게 겨냥하는 맞춤형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재익 교수는 “같은 도파민이라도 뇌의 위치와 작용 방식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며 “특정 뇌 영역과 수용체를 표적으로 하는 정밀 치료 기술 개발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뇌 신호 조절을 ‘균일한 작용’이 아닌 ‘공간적으로 분화된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복잡한 뇌의 작동 원리를 ‘공간 규칙’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낸 이번 성과는, 파킨슨병을 비롯한 퇴행성 뇌 질환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